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Close Up]박근혜 vs 문재인 경제공약 심층비교 순환출자 규제 및 출자총액제한

입력 | 2012-12-03 03:00:00

朴 “기존 의결권 제한땐 혼란”… 文 “문어발식 확장 막아야”




 

《 대선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후보 간 상호 비방전이 거세지면서 각 후보의 구체적 정책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향후 5년간 국민의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경제 분야 정책들은 그 난해함과 복잡성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독자들이 여야 대선후보의 경제정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올바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대선 경제 분야 6대 핵심 이슈’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를 연재합니다. 》

한국 대기업집단(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우리 경제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는 고속성장 과정에서 신규 사업에 필요한 투자재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정부도 상당기간 이를 용인했다. 한국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대기업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역대 선거 때마다 대기업 지배구조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와 순환출자는 이 논란에서 ‘태풍의 핵’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 朴 “출총제 부활 실효성 없어” vs 文 “순자산의 30%로 제한” ▼

현재 야권과 좌파 또는 진보성향 학자들은 “총수일가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재계는 “지배구조를 강제로 뜯어고치다가 투자와 고용이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는 여야 후보의 관련 공약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 외환위기 여파로 형성

순환출자란 그룹 안에서 특정 계열사의 출자(出資)가 다른 계열사를 돌고 돌아 다시 최초 출자 기업으로 돌아오는 환상(環狀)형 지배구조를 뜻한다.

자본금 100억 원에 이 중 총수 지분이 10억 원인 A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A기업이 50억 원을 계열사인 B기업에 투자하고 같은 방식으로 B기업은 C기업에 30억 원, C기업은 다시 20억 원을 A기업에 출자한다. A기업은 B, C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동시에 C기업으로부터 다시 출자를 받기 때문에 실제 자본금은 100억 원이지만 장부상 자본금은 120억 원으로 늘어난다. 원래 10%였던 A기업 총수의 영향력도 C기업의 출자금을 더한 만큼 늘어난다. 실질적인 자금 투입 없이 장부상 자본금이 늘어나고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순환출자가 본격화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게 했다. 자산매각이나 외자유치에 한계가 있었던 기업들은 대규모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끌어올려 부채비율(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을 낮췄다. 이때 각 계열사가 서로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순환출자구조가 만들어졌다.

당시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순환출자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여파로 폐지했던 출총제를 2년여 만에 꺼내 들었다. 계열사 간 출자총액을 묶어두면 자연히 내부투자가 줄어들고 나아가 순환출자도 스스로 해소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출총제는 대기업 투자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대폭 완화됐다가 2009년에 폐지됐다. 순환출자도 여러 차례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워낙 파급력이 큰 주제여서 지금까지 한 번도 입법이 이뤄진 적은 없다.

○ 두 후보 경제공약 중 견해차 제일 커

순환출자와 출총제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견해는 뚜렷이 갈리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겠지만 ‘기존’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박 후보는 “합법적으로 인정되던 과거의 의결권까지 제한하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후보는 출총제 부활에 대해서도 “다시 도입해도 실효성이 없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동시에 기존 출자분에 대해서도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전부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적으로 해소가 안 될 경우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출총제도 재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그룹에 대해 순자산의 30%까지만 출자할 수 있도록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 투자·고용 위축 vs 공정경제 시발점

진보 성향인 경제개혁연구소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15개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데 약 8조5000억 원이 든다고 분석한다. 이는 순환출자 연결고리 중 주식가치가 가장 적은 고리를 끊을 때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주식매각차익에 대한 세금, 지분의 대규모 매각에 따른 주가 하락과 각종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이 비용이 적어도 20조 원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순환출자 해소비용이 큰 만큼 기업의 투자가 위축돼 고용 등 실물경제에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논리다. 이처럼 순환출자에 대한 논란은 해소비용을 산출하는 것부터 차이가 난다.

순환출자 해소가 현실화되면 그룹들은 순환출자 관계가 없는 계열사를 동원해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을 쓸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계열사가 없으면 총수가 직접 자기 돈을 동원해야 하지만 오너의 재산이 대부분 주식인 것을 감안하면 지분 매각에 따른 계열사의 주가 하락이 우려된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연기금이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쉽지 않다. 연기금이 순환출자 해소에 사용되면 특혜 시비에 휩싸일 수 있고 외국계 펀드의 도움을 받으면 향후 경영권 위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행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이 경우 외환위기 직후처럼 국내 알짜 기업들이 해외 자본에 헐값에 팔려 나갈 것이 우려된다”며 “순환출자가 마치 국내 대기업만의 폐해처럼 언급되지만 일본 도요타, 독일 도이체방크 그룹 등 해외 기업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사업 방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순환출자의 해소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주주자본주의의 대원칙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총수가 실제 지분 이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데 순환출자 해소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뜻이다. 또 순환출자 금지는 대기업에 과도하게 편중된 한국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공정경제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일부 기업이 순환출자 형태를 띠긴 하지만 국내 재벌과는 성격이 다르다”라며 “한국의 경우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세습 경영 수단 등으로 악용해 국민 정서와 배치되는 일을 자초했다”고 설명했다.

출총제는 대기업들이 계열사에 대해 투자할 수 있는 지분을 아예 법으로 제한해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출총제는 이제 실효성이 낮고, 오히려 기업의 건전한 성장에 필요한 투자만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출총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한다. ‘재벌빵집’ 등 골목상권에 대한 투자도 현재 대기업의 순자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지금 형태의 출총제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