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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강명]만화 속의 회사 인생

입력 | 2012-12-03 03:00:00


▷한국기원이 발행하는 월간지 ‘바둑’이 만화 캐릭터 ‘장그래’를 송년호 표지 모델로 올려 화제가 됐다. 장그래는 ‘이끼’로 잘 알려진 윤태호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만화 ‘미생(未生)’의 주인공이다. 그는 바둑 프로기사 입문에 실패하고 대기업 종합상사에 2년 계약직으로 들어가 회사 말단에서부터 기업의 생리와 조직 생활의 노하우를 차곡차곡 배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필독 만화’로 불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샐러리맨의 회사 생활을 다뤘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 작품은 종종 일본의 기업 만화 ‘시마 시리즈’와 비교된다. 1983년부터 연재되고 있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 시마 고사쿠(島耕作)는 파나소닉이 모델인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다. 두 만화가 소재와 배경은 비슷해도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고 승진을 거듭하는 시마의 이야기는 직장인의 ‘소망성취 판타지’에 가깝지만 ‘미생’은 현실적이다.

▷다른 국내 직장 만화들도 ‘시마 시리즈’와 같은 샐러리맨 영웅담보다는 오히려 서글픈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인기다.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와 박성훈 작가의 ‘괜찮아 달마과장’은 사무실의 자잘한 인간관계가, 시트콤 제작이 추진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대형마트와 납품업체 간에 벌어지는 부조리한 관계가 주된 소재다. 이른바 ‘열혈물’로 분류되는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조차 광고주의 횡포에 가까운 요구에 시달리는 광고회사 직원들의 눈물 나는 노력이 웃음의 주된 포인트다. 같은 작가가 그리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대기업 면접 과정을 희화화한다. 직장인과 구직자 처지에선 ‘웃음을 주면서 눈물이 나는’ 만화들이다.

▷일본에서도 2000년대의 사무실 소재 만화는 1980년대에 나온 시마 시리즈와 달리 직장 생활에서 빚어지는 골계미(滑稽美)를 강조한 작품들이 인기를 모았다. 한국에도 자동차광 청년이 국산 자동차로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내용의 기업 만화 ‘아스팔트 사나이’(허영만 화백)와 같은 작품이 있었다.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2008년 기사에서 일본의 사무실 만화들에 대해 “앞 세대와 달리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인 일본 직장인들의 욕구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만화가 회사 인생의 속살을 보여주는 시대다.

▶ [채널A 영상] ‘콘텐츠 경쟁력’ 가진 만화들 대중문화 움직인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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