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1974∼ )
저녁이 하늘을 기울여, 거품 바다
그득 한 잔이다.
속에서부터, 모든 말은 붉다. 불길 몸으로 휘는 파도의
혀.
이 위로, 몇 척의 배가
지나갔을까.
불에 올렸다.
울화로 부글부글한 화자는 바다로 달려간다. 아마 바닷가 횟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횟집 유리창 너머 하늘 가득 노을이 넘실거렸으리라. 화자는 큰 잔 가득 소주를 붓고 벌컥, 그득 한 잔 노을을 삼키는 바다와 대작했으리라. 화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말들은 비분으로 붉은데, 그만큼이나 붉은 파도의 커다란 혀가 화자의 생채기 난 속을 핥아줬으리라.
술을 많이도 마셨나 보다. 집에 돌아와서 한 주전자 가득 수돗물을 받는다. ‘이 위로, 몇 척의 배가/지나갔을까.’ 주전자에 담긴 물만 봐도 그 심상이 떠오를 만큼 오래 들여다 본 바다. 바다의 위로가 화자를 어느 정도 진정시켜주었나 보다. 이제는 차분히 차를 끓여 마시려는 걸 보니.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