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돈 쌓아두고 국내서 돈 빌리기 일쑤
전력설비와 데이터센터 장비 등을 제조하는 미국의 에머슨 일렉트릭은 최근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 납세 등을 위해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가진 돈이 없어서 투자자들에게 손을 벌린 게 아니다.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 등에 20억 달러(약 2조1670억 원)가량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주요 기업들이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에머슨 일렉트릭 관계자는 “세금 측면에서 효율적일 때만 해외에 예치해 둔 현금을 들여온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이 회사가 해외에서 현금을 갖고 온 액수는 5억 달러에 그쳤다.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을 갖고 오면 미국은 현지 과세당국에 낸 세금을 뺀 금액에 35%의 세율을 적용한다. 반면 해외에 두면 미 국세청이 별도의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고성능 공구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인 ‘일리노이툴워크스’는 매출의 40%를 미국에서 올리지만 9월 말 현재 보유한 현금(약 21억 달러) 가운데 단 1달러도 미국 내에 두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월풀도 각각 보유한 현금의 87%와 85%를 미국 밖에 두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해외에 예치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에 대해 과세하지 않았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하면서 과세기반을 넓히고 미국 기업의 유턴(미국으로 다시 돌아옴) 유도 및 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할 계획임을 밝혔다. 기업들은 더이상 현금을 해외에 쟁여두는 것이 별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좌불안석하고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