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기자, 아시아나항공 ‘시승 훈련’으로 체험한 현실
지난달 21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의 B767-300 시뮬레이터 안에서 이 회사 운항훈련팀 이근우 기장(왼쪽)이 조종석에 앉은 기자에게 항공기 조종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지난달 21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센터. 아시아나항공 B767-300 운항훈련팀 이근우 기장은 옆에서 쉴 틈 없이 지시사항을 쏟아냈다. 승객 250명을 태운 채 시속 300km로 활주로를 달리던 동체가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자 몸이 함께 허공에 뜨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땅이 점차 멀어지고 항공기는 구름 속으로 올라갔다.
일본 나고야로 향하는 운항궤도에 올라 자동 운항장치를 켜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 항공업계, 조종사 부족 현상 심화
모의비행 시뮬레이터는 ‘조종사의 요람’이다. 승객을 태우고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는 훈련생들은 이 장치 안에서 훈련을 받으며 조종사로 성장한다. 현직 기장으로 근무하는 조종사도 시뮬레이터를 통해 연간 5일의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조종사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조종사 육성이 항공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내 항공업계는 만성적인 ‘조종사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취항 노선이 급격히 확장되며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항공진흥협회에 따르면 국내 양대 민간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보유 항공기 1대당 조종사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17.9명과 17.2명이다. 조종사의 의무휴식시간 등을 감안하면 현재 조종사 수는 부족하다고 항공업계는 지적했다. 자체 조종사 양성 능력이 부족한 저비용항공사는 외국인 경력 조종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조종사 인력이 5∼10% 정도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조종 인력은 향후 5년간 1600여 명이 부족할 것으로 국토해양부는 예상한다. 더구나 국내 항공업계는 조종사의 고령화 현상까지 겪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40세 미만 조종사는 831명(전체 조종사의 32.6%), 아시아나항공은 337명(27.5%)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항공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중국은 외국인 조종사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조종사의 연간 최대 조종시간을 1000시간에서 850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조종사들이 중국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도 내년부터 항공사들이 신규 채용하는 조종사의 누적 비행시간을 1500시간으로 늘리기로 해 신규 조종사 육성이 어려워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1960년대 이후 최악의 조종사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 항공업계 ‘조종사 육성 시급’
아시아나항공의 B767-300 모의비행 시뮬레이터를 밖에서 본 모습. 수조탱크 모양의 이 시뮬레이터는 조작에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여 실제 비행 시 체감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합작으로 916억 원을 들여 인천 영종도 운북지구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운항훈련원을 짓기로 했다. 내년 2월 2만1940m²의 터에 착공하는 이 훈련원은 2015년 2월 완공할 계획이다.
CAE도 9월 2500만 달러를 투자해 김포항공산업단지에 올해 말까지 모의조종 훈련센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2015년까지 총 4기를 도입해 항공부문 특성화 대학 학생과 국내외 저비용항공사의 조종훈련까지 맡을 계획이다.
국내 주요 조종사 육성시설로는 2010년부터 조종교육을 시작한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이 있다. 각종 시뮬레이터와 연습용 항공기를 갖춘 이 훈련원에서 비행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이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는 1년이 걸린다. 교육을 수료한 뒤에는 항공사에서 인턴 근무를 하거나 비행 교관이 되어 민간항공사 조종사가 되기 위한 경력을 쌓는다. 최근 조종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그동안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었던 이 훈련원 입학 요건을 이달 모집 대상자부터 폐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항공사는 조종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취항노선 경쟁에서도 뒤질 수 있다”며 “모의비행 시뮬레이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