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정치부장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 수석비서관에게 총선에 나가라고 종용했다. 사실상 압력이었다. 그러자 이 수석비서관이 반발하듯 따졌다. “왜 저 사람은 놔두고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그러자 되돌아온 노 대통령의 대답. “저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예 아니야. 전혀 안 맞아.”
“저 사람 정치에 전혀 안 맞아”
문 후보가 ‘전혀 안 맞는’ 정치에 뛰어들게 된 건 친노세력의 영향이 컸다. 권력을 향유하다가 ‘폐족’의 나락으로 떨어져 더더욱 상실감이 컸던 친노 주주들….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비운으로 기사회생하자 이번 대선을 겨냥해 ‘얼굴’로 내세운 CEO(최고경영자)가 바로 그다.
문 후보가 ‘친노를 내치라’는 당 내외의 무수한 설득과 압력에도 그러질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정치 입문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리라. ‘고용 CEO’가 주주를 내치는 건 예사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치가 안 맞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담백한 성품의 문 후보 아닌가.
이처럼 문 후보는 대선 가도의 출발점부터 사실상 새누리당의 오너인 박근혜 후보와 판이하다. 거칠게 말하면 오너는 자기 책임 아래 기업을, 심지어 대선을 말아먹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고용 CEO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문재인은 대선전 초반부터 친노 주주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아바타’란 모욕적인 표현까지 들어가며 유명을 달리한 친노의 오너 노무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뿔싸, 이를 어쩌나. 더 예쁜 ‘새얼굴’ 안철수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더구나 그는 친노의 대선 기획상품 격인 문 후보와 달랐다.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의 수요가 창출한 ‘신상(품)’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상을 득템 하고야 말겠다’는 쇼핑 중독자의 심리처럼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뭘 해도 그를 향한 ‘선망’의 열기는 빠지질 않았다. 이러니 할 수 없지 않은가. 대선 승리를 위해서 이번엔 안철수에 목을 매야 하는 게 문재인의 또 다른 ‘운명’이었나 보다.
지금이라도 ‘대선 독립선언’ 하라
문 후보는 4일 자신과 “이념적 차이를 느꼈다”고 말한 안 전 후보의 자택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문제는 이런 문 후보의 행보가 전혀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미덕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박근혜 후보와 근소 차로 접근한 분이 대선 막판까지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모양이 유권자인 국민들 보기에 좀 그렇다.
이제 문 후보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때가 됐다. 자신을 ‘문재인의 친구’라고 불렀던 노무현처럼. 문 후보가 지금이라도 이런 ‘대선 독립선언’을 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더이상 안철수 전 후보에게 손을 내밀지 않겠습니다. 안 전 후보의 새정치에 100% 공감합니다. 오늘이라도 안 전 후보가 저를 도와준다면 너무나 고맙겠습니다. 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한 단일화나 연대 같은 정치공학은 이제 버리겠습니다. 선거일까지 홀로 국민만 보고 뛰겠습니다.” 대선은 ‘아직도’ 13일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