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좋은 수업교재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1806년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는 러브레터의 전형이다. “당신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고, 내가 그대의 모든 것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바꿔줄 수 없나요”라는 절규 속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절절한 회한이 담겨 있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에서 아들 다섯을 잃은 어머니에게 보낸 서한은 미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편지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달래 드리려는 내 언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고 있습니다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장엄한 뜻에 고개를 숙이는 바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대통령의 진심이 우러나는 편지다.
▷영남 안동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 호남 광주의 신진학자 기대승이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이며 7년간 나눈 편지는 서신의 예의와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지난번 잘못을 깨우쳐 주는 편지를 받고서 저의 앞선 편지에서 말이 거칠고 어긋난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퇴계의 글을 보면 치열한 학문적 논쟁 속에서 인품을 갈고닦는 선인(先人)들의 지혜를 알 수 있다. 컴퓨터 클릭 한 번에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e메일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는 생각을 곱씹어 글로 옮긴 뒤, 인편으로 몇 달씩 걸려야 편지가 오가는 상황을 못 견딜 거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