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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北과 ‘공포의 동거’ 할 건가

입력 | 2012-12-08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예고 후 돌아가는 상황은 올 3, 4월에 벌어졌던 소동과 닮은꼴이다. 한국 미국 일본은 ‘심각한 도발’로 규정하고 발사 철회를 요구했다. 중국은 시진핑의 특사가 귀국한 다음 날 터진 발사 예고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 발사를 강행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강력한 제재를 할 것이라는 엄포 속에 한미일 외교 당국자들의 접촉도 잦아졌다. 미국은 최첨단 군함과 감시 장비를 한반도 주변에 증강 배치했다. 일본이 자국 영토로 미사일 본체나 잔해가 떨어질 경우 파괴하라는 명령을 자위대에 내린 것도 지난번과 똑같다.

판박이 대응으론 도발 못 막는다

이런 판박이 대응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저지할 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이 주도한 다각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월16일 예고한 미사일 발사를 4월 13일 단행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북한은 외부의 압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똑같은 방식으로는 이번에도 북한의 도발을 막기 어렵다.

북한은 1일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높이 받들어’ 운반로켓 은하3호로 실용위성 광명성3호를 쏘아 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4월 발사 때는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이유로 내세웠다.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자가 된 힘은 100% 김일성과 김정일에게서 나왔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공언한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면 그의 권력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미사일 도발은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과 3위1체(三位一體) 한 몸임을 주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카드다.

김정은은 어떤 인물인가. 그의 진면목은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벌어진 열병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북한의 선전방송을 보는 것은 고역이다. 필자는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2시간이 넘는 북한의 중계방송을 3번이나 돌려봤다. 열병식의 김정은은 아내 이설주를 공개하고 놀이기구를 즐기는 그의 모습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김정은은 중저음의 단조로운 목소리로 연설문을 읽었다. 탁자에 손을 짚거나 가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지루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이 써준 연설문을 억지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각종 무기가 등장하고 수천 명의 병사가 등장하는 열병식이 시작되자 그는 딴사람이 됐다. 박수를 치며 웃고, 단상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다보고, 옆에 선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이영호 총참모장에게 질문을 던지고…. 병정놀이에 신이 난 철부지의 모습이다. 김정은의 경박스러운 반응을 보면 대규모 무기와 병력을 동원하는 무력 도발을 컴퓨터 게임 정도로 쉽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절로 든다.

김정은의 ‘미사일 불꽃놀이’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를 아버지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불꽃놀이’로 생각할 것이다. 10대 시절 그의 스위스 유학을 떠올리며 변화를 예측했던 일각의 희망 섞인 분석은 이제 접어야 한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는 영국에 유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4만 명이 넘는 국민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전을 계속하고 있다.

정권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주지 않는 한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을 저지하기는 어렵다. 두 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몰린다. 지금이야말로 칼을 품은 대북(對北)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과 ‘공포의 동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임기 막바지의 이명박 정부, 그리고 11일 뒤 차기 대통령 당선자 자리를 노리는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