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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영혼을 팔지 않았다”

입력 | 2012-12-08 03:00:00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말, 인상적이지요? 당신의 영혼은 어떤가요? 어디에다 영혼을 판 적이 없을 만큼 순결하십니까? 아니면 영혼을 팔아버린 그때 그 아픈 시간들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어 늘 가슴 한편이 시리고도 쓸쓸하십니까?

물론 영혼이라도 팔아서 거창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 중에 영혼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건 그냥 지지부진하기만 한 인생, 반전을 꿈꾼다는 뜻일 겁니다. 반면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하는 이의 말은 꼼수를 부리지 않고 원칙과 도리를 지키며 살아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영혼을 판 사람, 파우스트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시는 대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았습니다. 왜 팔았을까요? 존경받는 파우스트 박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영혼을 팔기 전 파우스트는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마침내 신학까지도 열심히 애써서 연구를 마쳤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게 가엾은 바보 꼴이라니!”

파우스트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데에 도달했으나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행했지요. 이루고 나니 별것도 아닌 것에 온 열정을 쏟은 세월이 그저 허망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나저나 악마 메피스토는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하고 우울하기만 한 파우스트의 영혼을 무슨 이유로 사려 했던 것일까요? 열정과 감성에 병이 든 그 영혼을 어디에다 쓰려고요? 생각해 보면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탐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지요?

영혼을 팔고 나서 파우스트는 무책임한 사랑도 하고, 질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분노에 휩싸여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그 진흙탕 같은 삶을 파우스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투구의 삶을 경험하며 삶은 누리는 자의 것임을, 그것이 지혜의 결론임을 고백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메피스토는, 평생 나쁜 일 한 적 없이 지적으로 선하게만 살다가 생기를 잃어버린 파우스트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파우스트의 반쪽이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메피스토는 이룬 업적은 많으나 지리멸렬하게 살아왔던 파우스트를 생명의 나무, 생명의 숲으로 인도하는 존재라 믿습니다. 그 메피스토를 만나지 못했으면 늘 숙제만 하고 살아온 파우스트가 어떻게 인생에 대해서 당당히,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기억합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메피스토의 대답을. 메피스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항상 악을 탐내면서도 오히려 늘 선을 이룩하는 힘입니다.”

메피스토는 악을 탐내는데도 선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선은 악의 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을 통과하지 않은 선은 가짜인지도. 선하게만 살아온 사람, 바른말만 하는 사람이 매가리가 없는 이치입니다.

당신이 영혼을 판 곳, 이전투구하게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삶이 요동치는 그곳이 쾌도난마(快刀亂麻)가 일어나야 할 자리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개성은, 그 사람의 이야기는 그가 지킨 규범이나 그가 이룩한 성과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가 경험한 지옥의 모양, 지옥의 형태에서 오는 것일 테니까요. 넘어지고 헤매고 헛디디기만 한 악한 세월 없이 선한 삶은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악할 이유가 없어서 선한 것은 선한 게 아니니까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