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고미석]삼성의 여성 발탁

입력 | 2012-12-08 03:00:00


삼성전자에서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는 데 통상 4년 정도가 걸린다. 중남미 지역 TV마케팅을 담당하는 해외 영업통 조인하 상무(38)는 그 기록을 9개월로 단축시켰다. 전북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7년 TV영업 분야 최초의 여성 주재원으로 아르헨티나에 파견된 뒤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전년 대비 12% 매출 성장을 기록했고 텔레비전 시장점유율을 36%로 끌어올려 1위를 달성했다. 이런 공적을 평가받아 3월에 부장이 된 뒤 다시 초고속 질주로 삼성전자에서 ‘별’을 달았다. 여성들은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의미가 크다.

▷한국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2009년 이후 남성을 앞서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취업자 중 전문관리직 종사자 비율도 2002년 14.9%에서 2010년 21.0%, 2011년 21.4%로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135개국 중 108위에 그쳤다. 남녀의 임금 격차는 117위, 고위직 비율은 104위에 맴돌고 있다. 기업과 공직에 진입하는 젊은 여성은 많아도 대다수가 비(非)핵심적 업무에 머물러 있음을 반영하는 수치다.

▷최근 출간된 ‘남자의 종말’이란 책에선 인류 탄생 이래 4만 년 동안의 남성 지배 사회가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변혁을 맞고 있음을 알린다. 단순한 힘이 쓸모없어진 후기 산업사회의 진행 방향은 여성이 주도권을 쥐는 가모장(家母長)제로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 미국의 전문직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1980년 21.6%에서 2011년 51.4%로 늘었다. 중국 민간기업 중 40% 이상은 여성들 소유다. 여성인력의 활용은 여성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닌 사회의 생존전략이란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어제 발표한 삼성의 정기 임원 인사에서는 조 상무를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임원 승진이 이뤄졌다. 관심을 모았던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나오지 않았으나 여성 임원 승진자들은 지난해 9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두고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뜨린 여성 임원과 관리직이 얼마나 더 배출될지 궁금하다. 기업에서 여성도 이제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