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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부를 대물림하는 양육의 질… 개천에서 용 날 수는 없을까

입력 | 2012-12-08 03:00:00

◇불평등한 어린 시절/아네트 라루 지음·박상은 옮김/560쪽·2만8000원·에코리브르




#1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케이티 브린들은 낡은 아파트에서 싱글맘 엄마, 언니, 남동생과 함께 산다. 세 남매는 각각 아버지가 다르다. 케이티는 집 주변에서 동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케이티가 엄마에게 “엄마가 내 얼굴을 때린 적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네가 말을 안 들으니 뺨을 때린 거지”라고 하자 케이티는 주먹으로 자기 이마를 마구 때렸다. 이런 자해가 3분간 이어졌지만 옆에 있던 엄마와 숙모는 ‘오프라 윈프리 쇼’만 볼 뿐 신경을 쓰지 않았다.

#2

초등학교 4학년 소년 개릿 탈링거는 수영장이 딸린 2층짜리 주택에 산다. 부모는 둘 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중산층이다. 이 집의 일상은 개릿의 스케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릿은 한 달 동안 축구팀 2개와 농구팀, 수영팀, 피아노와 색소폰 레슨에 참여했다. 이동할 때마다 부모가 자동차로 태워다주는 것은 물론이다. 아빠는 개릿의 축구 경기를 보며 열렬히 응원한다.

부모의 부와 사회적 지위, 학력 수준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많은 연구로 입증되었다. 인간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불평등하게 결정돼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이 불편한 진실을 미국의 현장 연구를 통해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본 연구보고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연구원들과 함께 9세, 10세 아동이 있는 열두 가정을 집중 관찰했다. 열두 가정에는 중산층, 노동자 계층, 빈곤층이 뒤섞여 있다.

중산층 부모는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적극 장려했지만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같은 이 책의 세밀한 묘사를 보면 현실은 냉정하다. 중산층 아이가 스포츠나 음악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의 소질을 키우는 사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아이는 이따금 집에서 이런저런 재능을 뽐내더라도 부모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중산층 부모는 웬만하면 자녀 앞에서 돈 얘기를 꺼내지 않기 때문에 중산층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권리의식을 갖게 된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은 자녀 앞에서 돈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때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돈이 드는 여가 활동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은 나가 놀거나 TV를 본다.

계층의 차이는 언어 사용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중산층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합리적 토론이 자주 오가고 다양한 어휘를 쓴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는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사용하는 어휘도 의사전달을 위한 실용적 어휘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히 아이들의 언어능력에 차이가 난다. 어린 시절 양육의 차이는 훗날 이들이 사용할 문화자본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 책의 씁쓸한 결론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