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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이종훈]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

입력 | 2012-12-10 03:00:00


이종훈 파리 특파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신전 건물의 외벽은 물론이고 내벽 기둥 천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촘촘히 새겨진 정교한 상형문자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 더 놀라운 건 이 신전과 조각들이 조선 왕조가 있었던 수백 년 전도 아닌 무려 3500∼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지난달 말 방문한 나일 강 룩소르와 아스완 유역에서 아부심벨과 카르나크 신전 등 이집트 문명의 찬란한 유적을 처음 만난 순간의 충격은 형언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놀라운 유적의 한 곳인 에드푸 신전의 외곽 벽 바로 옆 언덕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보기 힘든 벽돌집들이 있었다. 하루살이를 걱정하는 이집트 서민의 거주지였다. 인류 문명의 기원을 알리는 위대한 유적 바로 옆 허물어져가는 돌집들. 남루한 옷과 찌든 얼굴의 그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관광객에게 손을 벌렸다. 도저히 사기 어려운 조악한 기념품을 보여주며 “원 달러”(One dollar·1달러)나 “욍 유로”(Un euro·1유로)를 외쳤다. 함께 갔던 프랑스 관광객들은 “왜 이렇게 피곤하게 하냐” “제발 그만해라”는 말을 짜증스럽게 반복했다.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적이 쏟아져 나온 람세스 왕의 무덤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빌려주며 1유로를 요구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최첨단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유적을 남긴 선조의 후예들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혁명의 불꽃이 이집트로 옮겨 붙었을 때 카이로에 취재를 갔던 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30년 동안 무바라크 독재하에서 아무 말 없이 살다가 이제 갑자기 일어선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은 답은? 놀라지 마시라. “알라의 뜻이다.” 독재자를 섬기며 살아온 것도, 그를 몰아낸 것도 모두 알라의 뜻이라는 것이다.

선량한 무슬림이지만 과연 이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아랍의 봄’을 겪은 국가를 취재하며 느낀 것은 명분이야 어쨌든 이들이 봉기를 일으킨 이유의 근저에는 ‘배고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혁명의 외양은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과 세속주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갈등처럼 포장돼 있었지만 결국 서민의 주린 배가 문제였다.

그러나 혁명 뒤의 현실은 어떤가. 독재의 자리에 들어선 ‘이슬람’은 자유, 여성 인권, 민주주의, 경제에서 많은 취약점을 노출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새 헌법 선언과 국가를 이슬람식으로 바꾸려는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로 최악의 혼란에 빠진 오늘의 이집트도 그렇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하늘에서 떨어졌나. 이집트 국민이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게 5개월여 전이다.

인간은 간사하다. 기다리지도 않는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도 불과 반년 전에 뽑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싫다며 “니콜라 사르코지를 뽑았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늘어놓는다. 선택의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는 걸 몰랐나. 전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가난의 고통과 굴욕을 당신 세대에서 끝냈다. 인류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유산이 있으면 뭐할 것인가. 정작 오늘을 사는 국민 대다수는 1달러가 없어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 대통령 선거가 9일 앞이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더 절실하게 느낀다. 국민과 나라가 잘사는 게 정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