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안희정 송영길 박원순 이광재…
DJ(김대중)는 4수 끝에 대통령이 됐고 YS(김영삼)도 1970년 신민당 경선까지 합하면 3수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그런 셈법이라면 박근혜도 이번이 재수다. 안철수는 나이도 젊고 치명적 약점인 국정경험 부족을 보완해 5년 뒤에 다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DJ YS 박근혜는 지지 기반이 확고한 정치인이다. 태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30% 안팎의 지지자들이 있었다. 안철수는 ‘내 지지율도 꽤 오래 유지됐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도(中道) 무당파(無黨派)와 젊은 세대라는 안철수의 지지 기반은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386, 지금은 486이나 586이 돼버린 1980년대 학번들은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화를 이루어낸 주역이다. 이들은 선배 세대들에 대한 존경심이 약하고 기존 질서나 권위에 도전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TV토론에서 독설 쇼를 벌인 이정희도 80년대 학번이다. 안철수는 80년대 학번이지만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이전까지는 정치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에 편입되지 않고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것은 결국 기존 질서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당돌함이 나이든 세대에게는 충격이지만 20, 30대 젊은 세대에게는 통했을 것이다.
양당 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진 정치판에서 제3 후보가 나와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박찬종 정주영 문국현은 언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이인제와 정몽준은 다른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을 뿐이다. 정몽준이나 안철수처럼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후보가 단일화 정치공학에 매달리게 되는 것도 결국 제3의 후보가 양당체제로 편입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 놓친 칼은 멀어진다
정치에는 정치의 룰이 있다. 정치인은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끼를 갖춘 꾼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필리핀에서 영화배우 출신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해 1998년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부패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에 휩싸여 3년 만에 쫓겨났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필리핀과는 다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남의 손을 들어주고, “국회와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뭐 있느냐”며 총선을 건너뛰어 곧바로 대통령에 도전했던 무모함은 하이킹 복장으로 히말라야 등정에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권만 놓고 보더라도 5년 뒤에는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나설 것이고 안철수가 출세시킨 박원순 서울시장도 안철수의 은혜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PK(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재도전을 노린다. ‘안철수 현상’이 땅에 내려와 안철수 정치로 바뀌면서 현실이 녹록지 않았음은 그의 후보 사퇴가 웅변한다. 문재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무당파와 중도를 아우르는 인물로서도 빛이 바랬다. 4, 5년 뒤 대통령 후보군에서 안철수를 찾을 수 있을까. 각주구검(刻舟求劍) 같은 일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배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물속에 빠뜨린 칼은 점점 멀어져 간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