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는 세상 것들이
―이성복(1952∼ )
귀에는 세상 것들이 가득하여
구르는 홍방울새 소리 못 듣겠네
홍방울새 소리 나는 못 듣겠네
귀에는 흐리고 흐린 날 개가 짖고
그가 가면서 팔로 노를 저어도
내 그를 부르지 못하네 내 그를
홍방울새 소리 나는 더 못 듣겠네
신기(神氣)가 오른 듯한 시집, ‘남해금산’에서 옮겼다. 1986년 7월 5일 초판 발행. 자서(自序)에 따르면 ‘대체로 지난 6년 사이 씌어진’ 시들이라니 1980년부터다. 책날개에 소개됐듯이 ‘서정적 시편들로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시집이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이란 말이 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읊으며 즐긴다’는 어여쁜 뜻을 가졌다. 그런데 그 쓰임이 혹독하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개의치 않고 저 혼자 한가한 시를 읊는 시인들에게는.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