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고유섭 동상
인천시립박물관 야외마당에는 도자기를 바라보는 한국 미학의 선구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1905∼1944)은 1939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글에서 이처럼 말했다. 생전에도 늘 하던 말이었다. 한국 미학을 태동시킨 우현 선생이 개성박물관장을 지낼 때 가르침을 받았던 3명의 제자인 ‘개성 3걸(진홍섭 최순우 황수영·개성 출신으로 문화계의 거성)’ 중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은 1965∼67년 경복 경주 앞바다에서 대왕암의 존재를 확인했다.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실질적인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돼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라고 유언해 그의 유골이 안장된 수중릉에 대한 탐사 작업도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대왕암은 문무대왕릉이라는 이름의 사적지로 지정됐고, 1974년 우현 선생 타계 30주기를 맞아 그의 기념비와 추모비가 경주 감포와 고향 인천에 세워졌다. 인천지역 문화단체인 새얼문화재단은 우현을 제1회 새얼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뒤 1992년 우현 동상을 인천시립박물관(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건립했다.
경성제대(서울대 전신)를 나온 우현은 일찍이 민족문화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28세 때 개성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았다. 타계하는 날까지 11년간 관장을 지내면서 전국 유적지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걷거나 달구지를 타고 다니면서 고탑 등을 탁본하고 유적지를 사진에 담았다. 그의 둘째 딸 병복 씨(76)는 “도시락을 몇 개씩 가방에 넣고 스케치북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연중 절반은 집을 비웠다”라고 회상했다. 이런 열정으로 우현은 한국 미학 및 미술사의 선구자가 됐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