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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반병까진 괜찮아”… 회식후 운전대 잡은 그는 ‘1톤짜리 흉기’

입력 | 2012-12-10 03:00:00

송년회의 계절… 대한민국 음주운전자 표준 ‘金대리의 하루’ 재구성




재구성 도움말: 도로교통공단 류준범 연구원, 서울 마포경찰서 교통조사계 황상영 조사관,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2012년 12월 ××일 오전 1시. 중견기업 대리 김아차 씨(36)는 송년 회식을 마친 뒤 차를 몰고 귀가하다 서울 용산구 집 근처에서 한 중년 남성이 몰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경찰이 측정한 김 대리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면허 취소 수준). 그에게 이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아일보는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의 ‘음주운전자 심리 및 운전행동 특성 연구’ 자료를 토대로 음주운전이 사망 사고로 이어진 사례를 재구성했다. ‘김 대리’는 음주운전으로 단속돼 올해 공단의 안전운전 교육을 받은 417명의 공통 특성을 바탕으로 표준화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음주운전자의 특징을 반영하는 표준이다.

○ 음주운전 표준 김 대리의 잘못된 선택

“여보, 오늘 송년 회식이지? 차는 놓고 가요.” 사고 전날 아침, 아내의 걱정에 김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량이 소주 1병 반인 김 대리는 반년에 한 번 정도는 ‘반병까진 운전을 해도 된다’며 운전대를 잡는다. 음주운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사고 안 낸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상습 음주운전자의 흔한 사고방식이다. 한 해 두세 번 음주운전을 하지만 적발된 적은 운전 경력 15년 동안 두 차례뿐이라는 경험도 한몫했다.

#07:30 저녁 약속을 감안해 차를 집에 두고 가려던 김 대리는 한겨울 맹추위에 놀랐다. 외근 일정도 있어 차가 필요했다. ‘오늘은 음주운전을 자제할 수 있다’며 자신의 행동 통제력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그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걸음을 주차장으로 옮겼다.

#11:00 서울 강남구 회사 게시판엔 “회식이 끝난 뒤 동료들에게 대리기사나 택시를 불러주는 ‘동료 귀갓길 당번’에 자원하면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는 공지가 떴다. 당번은 책임감에서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게 보통이다. 술을 즐기는 김 대리는 자원하지 않았다.

#19:00 회식 장소는 걸어서 20분 거리. 걸어가기도 택시를 타기도 애매한 거리라 김 대리는 갈등했다. 그때 상사가 김 대리를 불러 세웠다. “걸어가기 애매하니 태워 달라”는 것. 운전을 하게 된 경위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한 다른 음주운전자들처럼 그는 차를 몰았다.

#00:30 회식에서 소주 1병을 채 덜 마신 김 대리. 노래방에서 한 곡 부르고 나니 술이 깬 듯한 기분이다. 대리기사를 불렀지만 송년 회식 시즌이라 호출이 밀렸는지 20분째 오지 않는다. 차를 놓고 택시를 타려니 주차도 걱정이고, 내일 차를 찾으러 다시 올 일이 막막하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이 상황에선 운전을 할 거야.’ 음주운전자들의 단골 자기 합리화 논리가 그의 머릿속에도 떠올랐고, 결국 운전대를 잡았다.

○ 신호위반-과속 등 위험천만

도로교통공단이 20∼40대 운전자 26명에게 음주 전후 시뮬레이터로 8.1km를 운전시켰다. 음주운전자의 평균 이동 거리다. 이들이 시뮬레이터 운전 중 일으킨 위험 행동을 토대로 김 대리의 위험천만한 음주 귀갓길을 재구성했다.

김 대리는 회식 장소에서 집까지 운전하는 15분 동안 네 차례 사고를 낼 뻔했다. 강남대로는 정류장을 출발하며 차로를 바꾸는 광역버스와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들로 혼잡했다. 김 대리는 술을 마셔 거리감이 둔해지고 시야가 좁아진 탓에 강남대로를 빠져나갈 때 보행자가 가깝게 서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몇 차례나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뻥 뚫린 한남대교로 진입하자 긴장감이 풀린 김 대리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음주자는 가속 페달은 세게, 브레이크 페달은 약하게 밟는 경향이 있다. 히터의 따뜻한 공기에 살짝 졸음이 온 김 대리는 차선 분리대를 들이받을 뻔했다.

한남대교를 지나 숭례문 방면으로 U턴하다가 김 대리는 맞은편 차량과 부딪칠 뻔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급히 운전대를 꺾은 김 대리의 차가 차선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 주변에서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가 들렸지만 김 대리는 무시했다.

남산공원 방면 우측도로로 진입하면 곧 집이다. 꺼질 듯 깜빡이는 노란 신호등을 본 김 대리는 오히려 속도를 높여 직진했다. 오른쪽에서 직진 신호를 받고 출발한 승용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승용차 운전석을 들이받고 김 대리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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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서동일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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