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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컬처 IN 메트로]‘남영동 대공분실 5층은 ‘공포의 미로’

입력 | 2012-12-12 03:00:00


영화 ‘남영동 1985’의 배경인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일명 ‘남영동 대공분실’.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사용되는 이곳은 5층 조사실 일부가 그대로 보존돼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동아일보DB

눈이 가려진 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왔다.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가린 천을 풀자 철판으로 벽면을 두른 살풍경한 방 안이다. 두려움에 떨던 남자는 묻는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최근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받았던 22일간의 고문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과거 고문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경기 남양주촬영소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실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서울 용산구 갈월동 남영역 인근에 과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76년 완공됐는데 천재 건축가로 불리는 고 김수근 씨가 설계를 맡았던 것으로 건축계에 알려져 있다. 피조사자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있어 김 씨가 설계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건물 용도를 알고 설계했는지 등이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검은색 벽돌, 안쪽으로 푹 파인 출입구 등 건물 외관이 특히 김 씨의 당시 작품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5층 창문 너비가 유난히 좁다는 것이다. 바로 이 좁은 창이 설치된 5층이 실제 고문이 자행됐던 곳이다. 머리를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창문 폭이 좁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탈출, 투신하기도 어렵다.

피조사자들은 보통 건물 뒷문으로 원형계단을 통해 바로 5층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몇 층까지 올라가는지, 어디쯤인지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조사실이 배열돼 있는데 서로 문이 마주보지 않고 엇갈리도록 방을 배치했다. 심문을 받다 출입문이 열려 바깥을 내다봐도 벽만 보이게 한 것이다.

현재 각 고문실 내부 집기는 모두 치워진 상태. 물고문 용도로 설치됐던 욕조도 모두 철거됐다. 6·10민주항쟁을 촉발한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았던 509호만 과거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김 전 고문이 고문 받았던 515호는 복도 끝 방으로 조사실 중에서도 넓은 편이다.

영화에는 심문에 지친 조사관이 주인공 김종태(박원상)를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우려다 자기가 앉았던 바퀴의자를 밖으로 치운 뒤에야 자리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고문실에 비치된 의자, 책상 등은 혹시 모를 자해나 사고를 막기 위해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 역시 함부로 깰 수 없도록 철망으로 막아 뒀다. 지금도 방바닥의 나사못 흔적과 천장등 철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센터는 5층 고문실과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 및 인권교육·전시관, 1층 역사관, 홍보관 등으로 꾸며져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다른 층은 경찰청 인권보호 관련 부서 사무실, 인권상담실과 세미나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평일에만 관람이 가능하다. 02-3150-2639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