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완곡어법의 대가(大家)다. 일본 여성에게 ‘공연티켓이 2장 있는데 며칠 뒤 같이 갈래’라고 제의할 때 “초대 고맙다. 그날은 여차여차 안 된다. 하지만 다음에 꼭 초대해다오”라는 답변을 들었다면 딱지를 맞은 거다. ‘다시 초대해다오’라는 말은 진심이 아니다. 곧이곧대로 또 초대하면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듣게 된다.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식으로 문장을 늘리는 것도 일본식 완곡어법이다. 하지만 협상에서 거절의 뜻을 ‘검토하겠다’ ‘생각해보겠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다. 군(軍) 성노예를 종군위안부, 침략을 진출 또는 진공(進攻)이라고 부르는 것은 완곡이 아니라 본질 왜곡이다.
▷서울시내버스에서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용할 때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안내음성을 가끔 듣는다. 그러면 차에서 내려 충전하거나 현금을 찾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잔액이 2500원 이하로 남으면 “충전이 필요합니다”라는 안내가 먼저 나온다. 그쪽이 완곡할 뿐 아니라 민망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한 시민의 아이디어를 서울시가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