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소수민족 신화집 펴낸 김선자 박사
동아시아 신화를 연구해 온 김선자 박사는 “그 넓은 땅에서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이 사는 중국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신화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몽골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다. 타르바는 인류의 온갖 지혜를 담고 있는 이야기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학자 김선자 박사(55) 역시 오래된 이야기 속에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는 ‘김선자의 이야기 중국 신화’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중국 소수민족의 신화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신화를 알려왔다. 최근에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소수민족 신화를 모아 ‘오래된 지혜’(어크로스)를 출간했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김 박사는 “현재 우리가 부딪힌 환경 파괴, 부의 편중, 과도한 경쟁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신화에 있다”고 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은 주로 산맥, 사막, 초원, 협곡 등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았어요. 그러려면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남을 짓밟고 올라가기보다는 자연과 공동체를 지키는 게 중요했죠. 그들의 신화는 이러한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2007년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이라는 중국 책을 번역하던 그는 구이저우(貴州) 성 둥족의 옷이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이라고 묘사된 것을 보고 막막했다. 무슨 색을 표현한 말인지 확인하고자 구이저우 성으로 훌쩍 떠났다. “현지 주민이 솜을 따고 옷감을 짜고 염색해서 말리는 전 과정을 지켜봤어요. 그렇게 확인한 둥족의 옷은 말 그대로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이었죠!”
김 박사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동아시아 신화는 기본적인 구조부터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부계사회의 논리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끄집어 낸 이야기가 많고요. 반면 동아시아 신화는 밋밋할 정도로 갈등구조가 적은 편입니다.”
이런 차이는 신화 발생 지역의 자연 및 사회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무역이 번성하고 경쟁이 치열했던 지중해 지역의 산물이고, 동아시아 신화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농사를 지어 살아남은 민족의 협동적 생활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의 신화가 허황된 미신으로 간주돼 많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다. “중국에는 지금도 골목마다 신들이 살아 있고 그 신앙과 의례가 문화적 힘이 되고 있어요.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우리 신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