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고추장
―이인철(1961∼ )
이슬을 닦고 장독뚜껑 열면
곰삭고 있는
해
하나
저렇게 붉으면
저렇게 뜨거우면
사랑처럼 단내가 풍풍 나는구나
강천산 단풍보다 더 싱싱한 색이 돋는구나
물씬
물씬
솟구쳐 오르고
양푼에 곰삭은 해 한 수저 떠넣고
붉은 밥을 비비면
칼칼한 입맛
고추씨 같은 별빛과
왕대나무숲 붐비는 바람소리
담 넘어 우리를 부르는 어머니의 가는 손
들린다
뜨거웠던 시절에
은어떼처럼 되돌아오는
고추장을 보면 뭔가를 비벼 먹고 싶고, 뭔가를 비벼 먹을 때 고추장 한 숟가락이 없으면 서운하다. 고추장 없는 비빔밥은 노른자 없는 계란프라이다. 우리 인생의 고추장은 뭘까? 내 생에 고추장 같은 사람은 누구누구일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