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월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도루묵은 겨울철 별미다. 찌개나 조림으로 인기가 많지만 소금만 술술 뿌려 구워 먹어도 일품이다. 동아일보DB
도루묵은 이름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생선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처럼 조선 선조가 피란 때 ‘묵’이라는 생선을 먹어 보고 무척 맛이 좋아 ‘은어’라고 이름 붙였다. 전쟁이 끝나 환궁한 뒤 그 맛이 생각나 다시 먹어보니 예전과 맛이 달랐다. 임금이 “은어 대신 도로 묵이라고 부르라”고 명을 내린 이후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때문에 ‘말짱 도루묵’은 헛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관용구가 돼 버렸다. 그러나 맛에 있어서는 ‘겨울 별미’로 꼽히는 데 손색없다.
○ 알 가득 찬 암컷 최고의 별미
도루묵찌개
도루묵은 찌개나 조림으로 인기가 높지만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굽는 맛도 일품이다. 다른 도루묵 요리에 비해 구이는 원재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산란을 앞두고 알이 가득 찬 암컷은 최고의 별미로 인정받는다. 이 시기의 도루묵은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데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여느 고급 생선 못지않다.
예전에는 도루묵 요리법이 훨씬 다양했다. 구이와 조림, 찌개 외에 회를 떴고 식해도 담갔다. 꼬들꼬들 씹히는 식감이 뛰어나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로도 인기가 높았다. 또 토막 친 도루묵을 무와 버무려 깍두기를 담그고 김장 때 대구나 동태 대신 도루묵을 넣기도 했다.
강원 고성군 거진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허금자 씨(41·여)는 “올해는 예년에 비해 도루묵이 많이 잡혀 회를 시키면 구이를 서비스 안주로 내줄 정도”라며 “찌개나 조림 등 싱싱한 제철 도루묵을 맛보려는 손님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 강태공 쉴 새 없이 짜릿한 손맛
도루묵잡이에 통발(그물로 만든 어항 형태의 어구)까지 등장했다. 방파제에서 통발을 던져놓고 1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100마리 이상 잡혀 올라온다. 주민 김영수 씨(46·강릉시 교동)는 “이번 주 들어 도루묵이 많이 줄었지만 지난주까지 20여 일 동안은 도루묵을 퍼 올린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잡혔다”며 “올해처럼 도루묵 요리를 실컷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