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부서지는 달 그림자…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그의 기구한 삶은 방랑의 연속이었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당(唐) 시대에 활동했고, 전국을 떠돌다 친척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긴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도중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러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가 달을 보며 마지막 시상(詩想)을 떠올렸던 곳은 양쯔(揚子) 강의 지류인 안후이(安徽) 성 차이스(彩石) 강으로 알려져 있다. 물길이 험하고 강폭이 좁은 그곳엔 멋진 기암절벽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도 똑같은 지명이 있다. 중국의 그곳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여 채석강이라는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국의 채석강은 강가가 아닌 바닷가에 있다. 수려한 자연환경 때문에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의 서쪽 끝 해안이 바로 그곳이다.
천천히 절벽을 따라 걸어본다. 이곳엔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과 편마암 위에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 쌓여 있다. 절벽은 마치 오랜 시간 책들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거대한 책장처럼 보인다. 과연 그 책들에는 얼마나 먼 옛날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절벽 위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줬다.
문득 이태백이 즐겨 찾았다는 중국 차이스 강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절벽의 기이함과 더불어 물에 비친 보름밤의 달빛은 분명 어떤 치명적인 유혹을 머금고 있었으리라. 그걸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해변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파도는 수위를 높여간다. 수천만 장의 책장이 펄럭이며 말을 건넨다.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억 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에 바람소리가 이야기를 채운다.
한동안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그 끝은 어디일까. 채석강이 보이는 숙소에 자리를 잡은 밤이었다. 시간은 멈춘 듯 아름다웠고, 달빛은 만조로 가득 찬 채석강을 희미하게 비췄다. 겨울 파도에 부서지던 달그림자가 가냘프게 보였다. 창가에 선 나는 매서운 추위만큼 창백한 겨울밤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달빛 가득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이태백의 마지막 발걸음을 헤아려봤다.
내가 노래하면 달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어지러이 움직인다.
깨어 있을 때에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또 제각기 흩어져가겠지
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
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깨어 있을 때에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또 제각기 흩어져가겠지
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
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중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