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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물은 뜨겁고 때수건은 아프고… 무서운 목욕탕

입력 | 2012-12-15 03:00:00


대중목욕탕은 누구나 맨몸을 드러내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면 더없이 ‘시원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아이가 어른들에게 손 잡혀 간 목욕탕은 뜨겁고, 시끄럽고. 맵고, 숨 막히는 곳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책읽는곰에서 펴낸 ‘장수탕 선녀님’(백희나 글, 그림)과 ‘지옥탕’(손지희 글, 그림)이다.

백희나는 점토 인형을 오물조물 주물러 낡고 오래된 목욕탕 풍경을, 수많은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인형들의 리얼하고 유머러스한 표정과 몸짓들이 펼쳐가는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무서운 목욕탕을 다시 가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덕지가 엄마를 따라 간 ‘우리 동네 목욕탕’은 그리 끌리는 곳이 아니었다. 스스로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이라는 장수탕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토끼 귀를 닮은 머리 모양에, 푸른색 아이섀도, 빨간색 립스틱, 그리고 값싼 모조 귀걸이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할머니는 폭포수 아래서 버티기, 바가지를 튜브 삼아 물장구치기, 물속에서 숨 참기 등 ‘냉탕에서 노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스스로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은 주름진 얼굴에 볼 살도 뱃살도 축축 늘어진 퉁퉁한 동네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덕지 마음을 홀딱 빼앗고 만다. 그래서 덕지는 뜨거운 탕도, 때를 밀리는 고통도, 온몸이 벌겋게 익어가는 고통도 꾹 참은 결과로 엄마에게서 받은 귀한 요구르트를 기꺼이 할머니에게 건넨다.

손지희는 철저하게 아이들 시각에서 바라본다. 목욕탕을 ‘지옥탕’이라고 하는 데서부터 어른의 개입을 배제한다. 엄마에게 잡혀간 동네 목욕탕에서 뜨겁고 숨 막히는 경험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하여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 붉은색으로 표현한 그림은 아이의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아이 마음과 달리 엄마는 뜨거운 물이 가득한 탕에 목까지 몸을 담그란다. ‘시원하게.’ 그뿐이 아니다. 자기보다 오만 배나 넓은 등을 내밀며 때를 밀란다. 그리고 양손에 때수건을 끼고 아이 몸을 벅벅 문지른다. 터져 나오는 아이의 비명,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 아이들에겐 분명 지옥탕이다. 한바탕 전쟁이 휘몰아치고 나니 몸은 보송보송 개운하다.

두 작가는 아이들 관점에서 목욕탕 실전기를 그려 보인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바라고 꿈꾸는 따뜻함과 유머와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조월례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