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시집 뺀 생전시 129편, 시집 ‘우리들의 시간’에 담아
진주여고 출신인 그는 같은 학교 선배의 남편인 소설가 김동리 선생에게 자신의 습작 시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김동리는 “소설을 써보라”고 권한다. 박경리 선생는 곧 소설 습작으로 방향을 튼 뒤,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현대문학’ 1955년 8월호에 발표된 단편 ‘계산’이 데뷔작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경리는 시심을 잃지 않았다. ‘못 떠나는 배’(1988년) ‘도시의 고양이들’(1990년) ‘자유’(1994년) ‘우리들의 시간’(2000년)과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년) 등 시집 5편을 펴낸 박경리는 어엿한 중견 시인이기도 했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해 25년 동안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눌러쓴 ‘토지’의 지난한 창작과정 속에서도 시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박경리의 시들을 모은 ‘우리들의 시간’(사진)을 마로니에북스가 최근 펴냈다. 유고시집을 제외한 4권의 시집에 실렸던 시 129편을 한 권에 망라했고, 당시 서문도 곁들였다. 크게는 세상과, 작게는 원고지와 씨름했던 작가의 분투의 역사가 그대로 담겼다.
‘변명했지/책상과 원고지에/수천 번 수만 번/나를 부셔버리고 있노라//그러나/알고 보면 문학은 삶의 방패/생명의/모조품이라도 만들지 않고서는/숨을 쉴 수 없었다//나는 허무주의자는 아니다/운명론자도 아니다.’(시 ‘문학’ 중)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