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아베 시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날인 8월 1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요구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강경 외교를 주문했다.
위기감과 패배주의로 예민해진 일본 국민들의 심리상태도 한일 관계의 지뢰다. 일본 내각부의 9월 조사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친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은 39.2%로, 작년(62.2%)보다 급락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이 ‘친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을 웃돈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한일 관계 현황에 대해서도 ‘좋지 않다’는 응답이 78.8%로 지난해보다 42.8%포인트 높아졌다.
자민당이 공약대로 내년 2월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격상시킨 후 이어 3월 교과서, 4월 외교청서, 8월 방위백서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양국 간 국민감정은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다.
아베 총재가 고노 담화를 수정하거나 8·15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면 한일 외교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 한일 관계의 완충 역할을 하던 의원 외교도 ‘개점휴업’ 상태다.
한편으로는 아베 정권이 출범한다고 한일 관계가 당장 파탄난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북한 미사일 발사,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 등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외교 안보 환경이 엄중한 때에 한미일 동맹 파트너인 한일 간 갈등은 어느 나라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고 있어 한국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기는 부담스럽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재가 200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총리 취임 후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표변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10월 자민당 총재에 취임한 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당시 “총리 취임 후에도 참배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는 “중-일, 한일 관계가 이런 상태인 만큼 말씀드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답변을 피하면서 여지를 남겼다.
도쿄=배극인·박형준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