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정치부 차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가동되고 주요 기관, 부처장의 하마평이 나오던 2008년 1월. A 씨는 이 당선자 측의 다른 핵심 측근과 다시 마주 앉았다. “국정원장 말고 급을 낮춰 다른 곳에서 새 정부를 위해 일을 해주세요.” 각종 동의서를 제출해 놓고 기다렸지만 막상 조각(組閣)이나 고위직 인사 때마다 “이번에는 미안하게 됐다. 좀 더 기다려 달라”는 전갈이 왔다.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이 대통령의 핵심 중의 핵심이란 최측근한테서 연락이 왔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출신지가 우리 쪽(대구 경북)이 아니어서 반대들이 많다. 양해를 해 달라.” 이 최측근은 비리 혐의로 현재 감옥에 있다.
며칠 전 저녁 모임에서 대통령 선거가 화제에 오르자 A 씨는 이같이 지난 일을 꺼내면서 “‘인사가 만사’란 것은 그토록 평범한 진리이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나 보다”라고 했다. 그는 “벼슬을 탐낸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을 들쑤셔놓고 나중엔 출신지를 운운하는 걸 보면서 ‘이 정권도 성공한 정권은 못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한 검찰총장 후보자는 ‘스폰서 검사’ 논란으로 인사청문회를 치르자마자 낙마했고, 직속 부하에게 들이받혀 불명예 퇴진하는 검찰총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각 기수의 일등부터가 아닌 꼴찌부터 발탁을 하다 보니 줄줄이 망신인사가 됐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 정권 들어 임명된 3명의 검찰총장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진기록도 수립됐다. 경북고 출신의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2008년 3월 이후 3번의 인사에서 드러내놓고 ‘TK 중심 인사’를 해 검사들의 전공을 몽땅 바꿔놨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별수사의 최고 정예부대라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현 정부 들어 주요 정치적 사건들에서 끊임없이 표적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을 낳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강도 높은 검찰 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박 후보의 개혁안 핵심은 대검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을 위한 상설특검제 도입 등이다. 문 후보는 대검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제시했다. 두 후보 모두 검찰 권력의 분산과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의지다. 상설특검이든 공수처든 새로운 수사기구를 만들어도 그 기구의 장(長)을 대통령이 입맛대로, 학연이나 지연을 따져 임명한다면 옥상옥(屋上屋)이 될 뿐이요, 또 다른 형태의 권력기관이 될 것이 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인사가 만사’란 경구를 되새기고 곱씹어야 한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