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장강명 지음/356쪽·1만2000원·한겨레출판
장강명은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에서 신촌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낸다. 그는 신촌에 대한 느낌을 “‘너는 못생겼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는 여인 같다”고 평했다. 한겨레출판 제공
작가는 도시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들을 끄집어낸다. 이들은 모두 신촌에 있는 오피스텔 뤼미에르와 크고 작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작가는 데뷔작인 장편 ‘표백’에 이어 다시 신촌을 배경으로 삼았다. 전작이 신촌에서 대학을 보내는 20대 청춘들의 좌절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캠퍼스를 벗어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좀 더 다양한 인물을 그린다. 뤼미에르 801호부터 810호까지 열 개의 방으로 풀어낸 단편 열 편이 그것이다.
소설집이 독특한 것은 단편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단편 ‘박쥐 인간’에서 801호에 살며 편의점과 만화 가게에서 일하는 10대 소년은 실은 박쥐 인간이다. 수십, 수백 마리의 박쥐로 변해 하늘을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박쥐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 깃든 공간에서 안온함을 얻는 존재라는 것. 이쯤 되면 박쥐 인간은 공상과학류에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녀리고 예민한 또 다른 존재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것은 너와 나일수도, 아니면 도시 골목마다 출렁이는 슬픔의 근원일 수도 있다. 단편 ‘피 흘리는 고양이 눈’에서는 유기 고양이의 눈으로 신촌의 어두운 구석을 훑거나, ‘쥐들의 지하 왕국’에서는 신촌 지하에서 몰래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반인반서(半人半鼠), 즉 ‘쥐 인간(혹은 인간 쥐)’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다. 일부 소설집을 읽을 때 느껴지는 동어반복이나 유사성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작가는 ‘표백’으로 등단할 당시 ‘명징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도 ‘삶어녀 죽이기’에서 인터넷 여론몰이의 폐해를 그렸고, ‘돈다발로 때려라’에서는 물질만능으로 빚어진 몰인간성을 비판하며 주제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그 전개가 기술적일수록 미학성이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박쥐 인간’이나 ‘명견 패스’ 같은 물기 촉촉한 단편들이 더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