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도 詩구절 빌려 운치있게 표현
그 사례는 숱하다. 좀 더 높은 경지를 원할 때나 승진 출세를 바랄 때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라고 즐겨 쓴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관雀樓)’라는 시의 한 구절로 “한 층 더 오른다”라는 뜻이다. 앞 구절인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천리 밖의 풍경을 보고 싶어)’과 이어 읽으면 맛이 더욱 살아난다. 한 층 더 오르는 이유가 남보다 더 잘나고 싶어, 권력을 더 누리기 위해, 부귀와 명예를 더 누리려는 세속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처불승한(高處不勝寒)’이란 시 구절도 있다. “높은 곳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할까”라는 뜻이다. 승진 출세 등을 고사하거나 뜻하지 않은 일로 낙마했을 때 많이 쓰인다. 높은 곳을 높은 직위로, 추위를 남들의 질투와 시기, 본인이 느끼는 외로움으로 바꿔 생각하면 뜻이 다가온다.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호인 동파로 더 알려짐)의 ‘수조가두(水調歌頭)’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의 고위 관리들도 예부터 옛 시를 빌려 마음과 뜻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달 중순 태국 방문길에 시 구절을 읊었다.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가운데 ‘내 마음의 선한 일은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와 ‘청렴결백하게 살고 바르게 죽는 것을 옛 성인은 중하게 여겼다(伏淸白以死直兮,固前聖之所厚)’라는 두 구절이다. 퇴임을 앞두고 가족 축재설에 휩싸인 원 총리가 결백을 옛 시로 주장한 것이다.
이런 관습과 문화 때문에 중국 서점에는 옛 시 코너가 제대로 마련돼 있다. 전문 해설서부터 일상 대화에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만 발췌해 모아둔 실용서 등 접근 방법도 다양하다. 인터넷서점인 당당망의 옛 시 분야에서 이달 초순 현재 가장 사랑을 받는 책들을 소개한다. 먼저 ‘아름다워 숨이 막히게 하는 당시(美得令人窒息的唐詩)’와 ‘아름다워 마음을 취하게 만드는 송사(美得令人心醉的宋詞)’가 있다. 올해 8월 출판됐으며 시인별로 대표작들을 모았고 또 시의 대표적 구절을 간략히 설명한 책이다. 실용서적 성격이 강하다. 9월에 나온 ‘한 권으로 읽는 가장 아름다운 옛 시사(一本書讀A最美古詩詞)’는 상하 2권으로 돼 있다. 유명 시의 핵심 구절을 두고 길게 설명하고 있다. 유명 문화학자인 베이징사범대 위단(于丹) 교수의 ‘가장 아름다운 옛 시와 사를 복습하다(重溫最美古詩詞)’도 인기를 끄는 책이다. 봄, 가을, 밝은 달, 전원풍경 등 상황별로 유명 시구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위 교수의 생각을 담아 냈다. 위 교수의 풍부한 지식이 돋보인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