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규원(1941∼2007)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오늘 위에 쌓여 있습니다
눈은 그래도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새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제의 새들은 그러나 발자국만
오늘 위에 있고 몸은
어제 위의 눈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있었다거나 있다거나 하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눈을 뚫고 서서
잎 하나 없는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렇게, 언뜻 눈과 새와 작은 돌들과 나무들을 그리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허공의 윤곽이다. ‘새와 나무’는 허공에 관한 정교하게 시각적인 시다. 새의, 작은 돌들의, 나무들의 그 허공은 공간의 허공일 뿐 아니라 시간의 허공이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 기억과 흔적, 부재와 현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하염없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허공의, 희고 부드러운 정적(靜寂)….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