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교육평론가
이런 학벌 마케팅은 “그래도 서·성·한까지는 가야지”란 입시 덕담으로 이어진다. 이뿐이랴, 교육특구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상기한 학교들이 아니면 대부분 재수를 시킨다. 학생들도 이들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자랑스럽게 학교를 밝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얼버무리고 만다.
여기에 한몫을 한 것이 바로 대학입시 배치표다. 대학입시에서 배치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과거 지방거점 대학이 붕괴되기 시작한 학력고사 이후 배치표에 따라 학과별, 학교별 줄 세우기를 통해 생긴 부작용이다. 이후 배치표는 무소불위의 입시권력으로까지 성장했다. 학생들은 성적이 나오면 입시배치표에 따라 그대로 학교를 선택했다. 1, 2점 차에 따라 대학과 학과가 순서대로 결정되었다.
이 배치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학은 배치표 작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로비를 시도하기도 한다. 특정 학교나 학과의 장래가 배치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갑과 을이 뒤바뀌어 있는 이런 현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입시배치표는 특히 학벌서열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서·연·고, 서·성·한’에서 더 나아가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한국외국어대·시립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학벌체계는 우리 사회의 학벌선호 심리를 배치표가 잘 투영해 준 결과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학벌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따진다. 말로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도, 취직을 하는 데도, 심지어 이성 친구를 만나는 데도 학벌을 먼저 따진다. 예컨대 대학생들이 소개팅을 하는 경우 ‘서·연·고·서·성·한’까지가 친구를 소개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잘 나타내주는 한마디가 있다. ‘국적은 변해도 학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더는 말이 필요 없는 표현이다. 학벌은 우리 사회 특유의 사회·문화적 봉건성과도 맞닿아 있다. 끼리끼리 폐쇄적 집단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아성을 형성한다. 특정 학교들을 빗대어 마피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벌, 혹은 군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서·연·고, 서·성·한’ 식의 학벌체계는 학벌사회와 권력화된 입시배치표가 만들어 낸 절묘한 합작품이다. 결국 이 기이한 ‘계급’은 우리 사회의 학벌문화가 깨지지 않는 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