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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평생 일군 병원 공중분해 시키다니…

입력 | 2012-12-25 03:00:00


동암의료재단 전 이사장 강모 씨(81)는 평생을 바쳐 키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한독병원을 분신처럼 아꼈다. 외과 전문의인 강 씨는 1970년대 작은 의원으로 출발해 이 병원을 119억 원의 가치를 가진 대형 병원으로 키워 냈다. 적지 않은 봉사활동으로 지역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세 아들도 모두 의사로 키웠다.

고령이던 강 씨는 2010년 10월 의료재단을 운영할 사람을 찾았지만 애를 먹었다. 장성한 자식들이 병원을 물려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심하던 강 씨는 지인의 소개로 장모 씨(61)를 만났다. 강 씨는 지난해 1월 ‘재단 이사장 자리와 운영권을 넘겨주고 45억 원을 받는다’라는 계약을 구두로 맺었다. 현행법상 의료법인은 유상으로 사고파는 게 금지돼 있어 구두로 약정을 맺은 것. 당시 장 씨는 강 씨에게 ‘명예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재단 설립자를 기리는 흉상을 세워 주겠다’라고 제의했다고 한다.

이사장으로 취임한 장 씨는 대금 지급은 차일피일 미루는 대신 병원 재산은 하나둘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CT기기를 비롯한 의료 장비와 수술 장비, 침상 등 병원 내 물건들까지 처분했다. 장 씨는 지난해 4월 병원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11억5000만 원을 빌린 뒤 본인 명의로 병원 장례식장을 인수했다. 병원을 담보로 모두 26억5800만 원의 사채를 끌어 쓰기도 했다.

돈도 받지 못한 채 40여 년에 걸쳐 가꿔 온 병원이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보던 강 씨는 결국 장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강 씨는 이 일로 받은 스트레스로 뇌중풍(뇌졸중)을 앓았다.

고소 사건을 맡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한꺼번에 45억 원을 모두 갚으라고 해 돈을 주지 못했다’라는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여 장 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강 씨는 억울하다며 항고했고, 서울고검 형사부(부장 이명재 검사장)가 직접 수사에 나서 장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인천지법 부천지원 임수희 판사는 지난달 22일 “계약 1년 10개월이 지나도록 피해자에게 대가로 지급된 게 전혀 없다”라며 장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임 판사는 “피고인은 재산을 가로챌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비난을 무릅쓰고 고백하건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재판을 마친 지금까지도 모르겠다”라며 “재판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피고인이 대가 없이 (119억 원 상당 가치를 지닌) 병원을 가로챌 확실한 뜻이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피해자가 팔십 평생을 들여 낳고 기르고 소중히 가꾼 병원을 통째로 집어삼킨 다음, 배 속에서 하나하나 분해해 버렸다”라고 적시했다. 장 씨는 이날 법정 구속됐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