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노인복지관 댄스교실 인기
10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 여자 어르신 C 씨(78)는 일흔 살 때 동네에 처음 생긴 노인복지관의 댄스교실과 노래교실에 등록하였다. 노래교실도 좋았지만 더 재미있는 건 댄스교실이었다. 춤을 춘다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건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울하던 마음이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잠도 잘 오고 한결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C 씨는 J 씨와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가슴 아픈 일도 많이 겪었다. 유부남과 사귀다 보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주는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소문을 들은 그의 아내가 나타나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한동안 복지관에 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C 씨에게는 가슴 아픈 일보다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이 나이에도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양쪽 집안 자식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나 왔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J 씨의 태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집에도 오지 않고, 연락조차 하지 않으면서 C 씨를 피하는 것이었다. 결국 한참 만에 나타난 J 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 그만 만나자”라고 했다. 내용인즉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제부터라도 마지막으로 아내한테 충실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대로 아내가 죽어 버리면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더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남녀 어르신 ‘잘못된 만남’ 잡음
199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노인복지관은 현재 전국에 200여 개가 있으며, 약 150만 명의 어르신이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복지관의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댄스교실이다.
댄스가 어르신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억눌렸던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고, 표현력도 키워 주며, 남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외로움도 달래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댄스교실에서 남녀 어르신 간의 ‘잘못된 만남’이 자주 발생하고 그래서 잡음도 많다는 점이다. W노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중에는 ‘그동안 참고 살았는데 이 나이에 못할 게 뭐냐?’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상대가 유부남, 유부녀인 줄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교실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저는 어르신들이 이러는 거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고 봅니다. 신문이나 TV를 보세요. 요즘 얼마나 성적(性的)으로 혼란스럽습니까? 중년 남녀들 바람 피우는 것 보면서 ‘쟤네도 그러는데 우리는 왜 못 하냐? 내가 뭐 국회의원 출마할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댄스는 좋지만 불륜은 좋지않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본 젊은이들은 남자 주인공 김만석 할아버지가 여자 주인공 송이뿐 할머니에게 ‘그대’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죽은 아내뿐이라고 생각하는 김 할아버지 나름의 ‘사랑 규칙’이 젊은이들의 가슴에도 와 닿았던 것일까?
모든 사랑에는 룰과 예의가 필요하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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