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6·25때 낙동강 방어선 지킨 전쟁영웅, 백선엽은 누구

입력 | 2012-12-26 03:00:00

다부동전투 승리… 전세역전, 한국군 최초 4성장군 올라



평양 입성한 백선엽 장군 1950년 10월 19일 백선엽 당시 육군 1사단장(왼쪽)이 평양에 입성한 뒤 프랭크 밀번 미군 1군단장에게 전황을 설명하고 있다. 백 장군이 군 역사 기록물로 육군에 기증한 사진이다. 동아일보DB


6·25전쟁에서 여러 기념비적인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92)은 한국과 미국에서 ‘살아있는 6·25전쟁 영웅’으로 불린다. 만주국 장교로 복무하던 중 광복을 맞아 26세 때 미군정이 조직한 국방경비대에 들어간 그는 1사단장(당시 29세) 재임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선을 지키면서 군단장과 육군참모총장 등을 맡아 군을 지휘했다.

6·25전쟁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다부동전투에서 그가 거둔 승리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된다. 1950년 8월 파죽지세의 북한군 공세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1사단장이던 그는 다부동전투에서 승리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당시 그는 선두에서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이런 결사항쟁으로 그의 부대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고 그 기세를 몰아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양까지 진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백 장군은 정전 이후에도 주요 직위를 맡아 한국군의 재건과 기강 확립, 국방력 강화 임무를 계속했다.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초대 1야전군사령관으로서 아시아 최초로 야전군을 창설하기도 했다.

예편 후엔 중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국 대사를 지냈고 교통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엔 비료회사 사장과 한국종합화학 사장을 맡아 기업가로 변신했고, 선인재단 운영을 비롯한 각종 교육 활동에도 나섰다. 고령의 나이에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과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강연과 저술 활동을 계속해 왔다.

다부동전투가 벌어졌던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는 그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전투는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가 그의 회고록을 수업 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공산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공로로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는 ‘시장경제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백 장군은 1940년대 일본군(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는 이력 때문에 한때 친일파 논란에 시달렸다. 올해 10월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으로부터 “민족 반역자”라는 공격까지 받기도 했다. 이에 보수단체와 장성 출신 의원들이 나서 “일제 치하에 나라가 없어진 상황에서 군 복무지를 선택할 수 없었던 그를 친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발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