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책임총리대통령이 믿고 의지할 ‘강-심-장’ 가져야
2009년 9월 정운찬 총리가 취임했지만 보통 총리와 진퇴를 같이하는 총리 정무실장은 한동안 바뀌지 않았다. 정 총리가 국가정보원 출신 김유환 씨를 정무실장에 앉히려고 하자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2010년 2월에야 정무실장은 교체됐다. 정 총리는 사석에서 “나와 일할 사람 한 명조차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처럼 국무총리의 위상은 시기에 따라, 인물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인사와 정책을 좌우하는 ‘실세 총리’가 있는가 하면 실권도 없이 ‘의전 총리’ ‘대독 총리’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① 대통령과의 돈독한 신뢰관계
전문가와 전·현직 관료들은 ‘대통령과의 신뢰’를 책임총리의 첫 번째 요건으로 꼽는다. 책임총리라도 ‘대통령 보좌’라는 헌법상 위상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총리실에서 정무비서관 등을 지낸 이재원 한국외국어대 재단 이사는 “대통령과의 신뢰, 시대적 상황, 본인의 능력이 맞아떨어져야 총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 중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세종시 시대에 걸맞은 위상-권한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
한 예로 김황식 현 총리는 2010년 김태호 총리후보자의 낙마 이후 ‘대타 총리’로 임명된 측면이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도 없다. 하지만 점차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지면서 지난해 검경 수사권 문제 등 주요 갈등 사안의 해결을 김 총리에게 맡겼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는 주요 현안을 대통령이 총리와 실질적으로 협의해 처리했다”며 “지금까지 ‘실세 총리’로 불렸던 총리들에 비해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고 설명했다.
②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쪽 총리’로 신망을 받던 이회창 총리는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려 했다. 그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내용이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고, 대통령 해외 방문 때 국방부와 일선 부대를 시찰하고 보고를 받았다. 결국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끝에 그는 4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정치적 경험과 대통령 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보완재 성격을 갖춘 총리가 필요하다”며 “태양이 두 개가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③ 책임총리에 걸맞은 강단과 소신
하지만 책임총리에게 걸맞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세도 동시에 요구된다. 과거 일부 총리의 위상이 지나치리만큼 낮았던 것은 “청와대가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릴 정도”(전직 총리실 간부)로 스스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첫 책임총리는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④ 도덕성은 기본, 경륜은 필수
총리로 임명되려면 국회의 과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필요 없는 대통령실장이나 국회 인사청문을 거치지만 국회 동의가 필수 요건이 아닌 장관과 주요 권력 기관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도덕성은 책임총리의 필수불가결한 자질이다. 김대중 정부의 장상 장대환, 현 정부의 김태호 총리후보자가 야당의 ‘도덕성’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총리의 권한이 강화될수록 검증의 강도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부 통할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행정 경험과 경륜도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는 “통합력과 행정부 장악력, 경륜이 있으면서 사회적인 평판을 갖춘 인물이라야 책임총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⑤ 대통합과 전문성의 상징적 인물
이전 대통령들도 지역 화합이나 정치적 배려를 총리 인선의 주요 잣대로 삼아왔다. 하지만 ‘100%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제시한 박 당선인에게 총리 인선은 대통합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반면 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부분 위임하려면 당선인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총리와 국정을 분담하려면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써야 하고, 대통합을 위해서는 상징성이 있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상징성을 갖췄으면서도 당선인의 핵심 어젠다에 전문성이 있는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채널A 영상] “호남 총리 발탁? 더 중요한 건…”
▶ [채널A 영상] 첫 인선 발표…박근혜 ‘인사 스타일’ 특징은?
장택동·고성호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