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워’에서 최고의 소방관 강영기로 분한 배우 설경구.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벌써 연기생활 20년. 그의 말대로 참 빠르다.
지난 20년간 참 많이도 싸웠다. ‘공공의 적’에선 강력반 형사로 범인과 싸웠고 ‘실미도’에선 살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 ‘역도산’은 몸무게와 전쟁을 벌였고 ‘해운대’에선 물과의 사투를 벌였다.
늘 죽도록 고생만 하는 영화에 출연하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요즘 영화들은 다 그렇더라고”라며 피식 웃는다.
인터뷰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설경구는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왔다. 그렇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분위기를 이끌었다.
▶ “내가 고생했다고 하니, 무안하고 부끄러워”
-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물과 싸우고, 불과 싸우고…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엄청 고생했다고 하니 무안하다. 소방관들의 고충을 표현하려 했지만 어떻게 실제 상황과 같을 수 있나. 우리는 안전장치도 하고 컷 사인이 나면 쉴 수도 있는데 그분들은 정말 사투를 벌이지 않나. 기사로 그런 말이 나가니까 부끄럽더라.”
“물론 그랬다. 그런데 액션이 많아 힘든 게 아니라 유독가스 때문에 힘들었다. 보통 화재사고가 나면 유독가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도 세트장 안에서 찍다보니 가스 나갈 곳이 없어 참 힘들었다. 호흡도 가쁘니까 유독가스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두통이 생기더라.”
- 시나리오만 봐도 힘들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 영화를 고집한 이유가 있나.
“‘열혈남아’를 찍을 때, 김지훈 감독이 충남 강경으로 나를 찾아왔는데 못 만났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따로 시간을 내 만나게 됐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화려한 휴가’ 막바지 촬영 때 제작비가 떨어져 돈을 구하러 다닌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이런 현실이라니…. 아무튼, 김지훈 감독이 ‘영화 촬영 때 배우를 어떻게 웃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그게 참 재밌더라. 그렇게 말하는 감독은 처음 봤다.”
- 제작보고회 때, 손예진을 캐스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 촬영장은 늘 즐거웠다고.
“놀긴 참 좋았다.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런 소모임이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찍었을지 모르겠다.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재촬영할 부분도 말하고 그랬다. 예진이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주량이 늘었다.”
-여배우들 주량을 늘리는 비법이 있나.
“그런 비법은 없다.(웃음)”
배우 설경구.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 “손예진, 여성미에 털털함까지 갖춘 최고의 여배우”
- 한효주와 ‘감시’를 찍고 있다.
“그렇다. 효주가 정우성을 보고 반했다. 전에 지하철역에서 셋이 같이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정우성을 보고는 ‘진짜 배우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나는?’이라고 물어보니 ‘선배님은 그냥 사람 같아요’라고 대답하더라.(웃음)”
- 섭섭했나.
“아니, 정우성이 좀 멋지긴 하다. 잘생겼고 부드러운 성격에 매너도 좋다. 게다가 앉아있지도 않는다. 멋있는 코트를 입고 늘 서 있다.”
- 그렇다면, ‘타워’의 손예진과 ‘감시’의 한효주의 매력을 비교하자면.
“한효주는 ‘감시’에 나오니까 다음으로 미루겠다.(웃음). 예진이의 매력은 말해야지. 손예진은 여성미와 털털함을 함께 갖고 있다. 손예진이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일당백을 했다. 대단한 배우다.”
- 어떻게 일당백을 했나.
“손예진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재밌다. 그 추운 새벽에 물고 싸우는데도 아무런 말도 안했다. 오히려 ‘오늘 소풍가는 날이네’라고 하더라. 긴장을 풀려고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동료배우들에게 많은 힘이 됐다.”
- 이렇게 즐겁고 힘들게 찍었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게. 잘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관객들의 판단에 맡길 차례다.”
- 혹시, 공약을 걸고 싶진 않은가.
“공약은 무슨. 높은 분들이 세운 공약 지켜지는 것 못 봤는데(웃음) 나까지 거들고 싶진 않다.”
▶“벌써 20년이나 됐다고? 에고…나도 많이 늙었네”
-연기 생활한 지 20년이 됐다.
“나도 몰랐네. 대학교 4학년 가을부터 대학로에 포스터 붙이며 연극했으니까 20년이 맞네. 그 때 다른 연극배우들은 연봉이 10만원~20만 원 될까 말까였는데 나는 월급으로 50만 원을 받고 다녔다. ‘라이어’라는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달은 80만원까지 받았다. 그러고 나서 건방지게도 프리선언을 했다. 그러니 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포스터를 붙이며 살아야 했다. 아마 내가 배우가 안됐다면 포스터업체 사장이 됐을 거다. (웃음)”
- 그럼 연기생활은 어떻게 이어 갔나.
“김미경 선생님께서 한 선배에게 ‘쟤 성실하게 보인다. 데리고 와 봐’라고 하셔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다. 부모님이 엄청 뭐라고 하셨다.”
- 아들이 배우가 된다고 하니 싫어하셨나.
“처음엔 집안이 난리가 났다. 그러다가 금방 싫증을 내는 내 성격을 아시는 부모님은 ‘2,3년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하셨나보다. 그런데 내가 계속하고 있으니 신기하셨는지 그냥 하게 하시더라. 그게 벌써 20년이 된 거다.”
- 연극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
“솔직히 두렵다. 내 눈앞에 늘 카메라였는데 관객들이 있다면 가슴이 엄청 두근거릴 것 같다. 전에 ‘지하철 1호선’이 독일에서 공연을 한다는 기념으로 서울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가슴이 정말 두근두근 거렸다. 눈이 마주칠까봐 걱정했다.”
- ‘타워’를 찾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타워’를 보러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배우가 관객에게 더 바랄 것이 있겠나.”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