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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박지원, 아직도 선동인가

입력 | 2012-12-27 03:00:00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한나라당)은 노무현(민주당)에게 2.3% 포인트(57만 표) 차로 졌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아슬아슬하게 진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 선관위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조작하면 개표 부정이 가능하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유포됐다. 한나라당은 대선 개표 과정에서 부정과 오류가 있다며 재검표 관련 소송을 대법원에 냈다. 2003년 1월 재검표 결과 득표수 집계 오류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자 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18대 대선이 끝나자 포털 등에서 수(手)작업으로 다시 개표하자는 청원 댓글이 18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투표율이 75.8%로 급등해 문재인(민주통합당)이 유리했기 때문에 박근혜에게 질 이유가 없다는 얘기들이 나돈다. 10년 전과 비슷하게 이명박 정부 선관위가 타깃이 되고 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17만, 18만의 아고라 청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를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의 재검표 요구를 공론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개표 과정에선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처음 도입된 투표지 분류기가 사용됐다. 사용 대수도 16대 대선 때 960대에서 17대 1377대, 18대 1742대로 늘어났다. 실제 개표 도중 여야 참관인들은 투표지 분류기의 작동 과정을 면밀히 감시했다. 여야 참관인 수도 분류기당 1명꼴로 늘렸다. 이번 대선이 박빙이어서 개표 과정에서 이의 제기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표는 실제로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선에서 진 당사자 문재인이 승복한 결과를 제3자가 못 믿겠다고 하니 답답하다.

▷며칠 전 출소한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꼼수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꼼수는 이번 대선에서 근거 없는 박근혜 굿판, 신천지 연루 의혹을 퍼뜨렸지만 역풍을 불렀다. 민주당의 대선 패인(敗因)은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친노 패권주의를 비롯해 단일화 만능론, 세대 전쟁 프레임 등 뻔히 드러난 것만 해도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공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사람이 나꼼수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다니, 아직 대선 때 선동하던 몽환에서 덜 깬 것인가.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