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에게 선물한 보석이 다른 여성의 피부에 닿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내 유언입니다.” 윈저 공작
십중팔구. 남편들은 명품 브랜드 선물 따위, 부인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두를 사주면 달아난다는 흑색선전을 서슴지 않으며 싸고 실용적인 선물을 찾는다. 생일에 베스트셀러 서적을 선물하는 몹쓸 짓도 한다. 책 고르기가 구두 고르는 일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 여자는 라마나 마하르시만큼 영적, 정신적 존재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본심에는 ‘잡은 물고기’에게 돈 쓰기 아까운 마음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 헨리의 동화 ‘크리스마스 선물’은 선물 쇼핑에 대한 고전적 충고다. 첫째, 머리핀이나 시곗줄처럼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살 것. 둘째, 선물의 순수성은 실용성과 반비례하므로, 세제나 다림판보다는 보석처럼 ‘쓸모없는’ 것을 살 것. 셋째, 그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선물할 것 등이다.
예를 들면, 유난히 추운 겨울 월급쟁이 남편이 몇 년 동안 모은 적금을 털어 부인에게 선물하는 코트. 또 예를 들면, “내가 왕실에서 받은 보석을 모두 아내에게 상속합니다. 단, 내가 아내에게 선물한 보석들은 다른 여성의 피부에 닿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쓴 유언장.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물론 세상에 단 한 사람, 영국의 윈저 공뿐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위(원래 에드워드 8세였다)에서 내려왔던 그는 죽을 때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보석보다 아름다웠던 그녀에 대한 추억, 그 순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부인에게 선물한 것이다.
심프슨 부인은 윈저 공을 처음 만난 날 입었던 드레스의 파란색을 기념해 결혼식 때도 ‘심프슨 블루’라 불린 같은 색깔의 웨딩드레스(이 디자인은 한국의 재벌가 결혼식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를 입었고, 윈저 공은 푸른색 보석을 눈에 띄는 대로 사서 그녀에게 선물했다. 물론 그런 선물을 아무나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내미는 선물이 ‘크리스마스 선물’인지 아닌지 알아본다. 자, 아직도 그녀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연락 요망이다. 기쁜 마음으로 퍼스널 쇼퍼가 돼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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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波忽溺 쇼퍼홀릭에게 애정을 느끼며 패션과 취향에 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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