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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두 번은 없다’

입력 | 2012-12-29 03:00:00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러닝타임이 24시간인 크리스천 마클리의 ‘시계’.

단 1초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다. 꼬박 하루 24시간이 걸린다. 미국의 미디어작가 크리스천 마클리의 영상작품 ‘시계’의 러닝 타임이 그렇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가는 동서고금의 영화 4000여 편에서 시간을 알리는 대사나 시계가 등장하는 장면만 절묘하게 편집해 하루가 그대로 응축된 작품을 만들었다. 2년 전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상영했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숨쉬는 현실 속 시간이 오전 11시 45분이면 화면 속 시간 역시 오전 11시 45분, 어김없이 일치하는 순간순간이 경이로웠다.

‘두 번은 없다’는 이맘때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시다. 째깍째깍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존재감을 숫자와 이미지가 아닌 언어로 일깨운다.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여성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에 실린 작품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한 줄 한 줄 찬찬히 읽으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무게에, 한 번뿐인 삶의 소중함에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신이 우리에게 공평하게 보내준 선물.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매달려도 제멋대로 떠나고, 와달라고 초대하지 않아도 어느새 찾아오는 것. 바로 시간이다. 지루한 일상인 듯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빠른 강속구에, 예측보다 낙차가 너무 큰 변화구에 적응하느라 올해 역시 허둥지둥 진땀을 빼야 했다. 그래도 그건 다 땅 위에 발 딛고 사느라 일어나는 마찰. 끝과 시작이 포개지는 지금 이 시간은 여일한 자세로 보내고 맞을 일이다. 당당하고 담담하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