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28일 민주통합당 새 원내대표로 박기춘 의원이 뽑힌 것은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또 한번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친노는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대선 패배 뒤 총선 패배 때와 똑같이 “모두의 책임”이라고 외치더니 원내대표 선거 때도 똘똘 뭉쳐 친노 쪽 사람을 밀었다. 대권이 안 되면 당권이라도 꽉 잡겠다는 패권주의다.
노무현 정부 때가 유토피아였다던 그들의 유세를 떠올려 보면 이번 대선 결과는 문재인 후보 말마따나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문재인은 패배 뒤 연거푸 “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지 못했다”고 역사의 죄인을 자처하더니 어제는 “비대위가 출범하면 힘을 보태겠다”고 재등장을 예고했다. 자신들만이 성공한 민주정부라고 믿거나 아직도 세상을 민주 대 반(反)민주로 보는 모양이다.
“선거는 선수끼리 국민 속이기”
5년 전 대선 패배 뒤 민주당에 변화의 움직임은 있었다. 포용적 성장과 일자리정책으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며 2009년 5월 17일 첫선을 보인 ‘뉴 민주당 플랜’이다. 그러나 엿새 만에 터진 노무현의 자살과 함께 민주당의 새 비전은 타살되고 말았다. 고인에게는 너무나 관대해지는 우리 국민의 심성을 그들은 친노에 대한 전폭 지지로 해석했고, 노무현정신을 외치며 좌클릭을 거듭했다. 그 결과가 결국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의 연패다.
지금이야 “계파가 어디 있느냐”고 우기고 있지만 친노는 노무현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실 여부, 그리고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가장 숭고한 정신 말하기 경쟁을 벌였던 사람들이다. 마르크스도 “난 마르크스주의자 아니다”라고 했다지만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과연 노무현정신의 소유권을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은 글로벌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며 사회가 시장을 통제하는 경제체제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실과도, 세계적 흐름과도 다른 얘기다. 균형감각 있는 정치학자로 알려진 윤평중조차 2010년 이미 “유럽의 진보도 성장과 일자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낭비적 복지정책을 제어하는 방향인데 분배 위주, 복지 위주 민주당의 좌회전은 세계적 맥락에서 이례적”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그나마 노무현은 청와대에 들어간 다음 천기를 누설했지만 친노는 그만큼의 인내심도 갖추지 못했다. 제대로 속이는 법도 못 배우고 ‘꼼수’만 늘었으니 한참 하수(下手)다. 여기에 그들이 통합진보당을 향해 비판했던 종북(從北) 성향과 패권주의, 여당을 향해 공격했던 불통과 불신의 정신까지 더해 갈수록 기세등등해졌다.
정직하게 사민주의로 진보하라
3년 전 ‘뉴 민주당 플랜’을 만들었던 김효석 전 의원은 “모든 것을 이념적으로 접근해 전부 왼쪽이 맞다고 한다면 가장 잘하고 있는 정당이 민노당(현재 통진당)”이라고 했다.
그들같이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의 재벌 해체와 보편적 복지를 계속 주장할 작정이라면 민주당은, 또는 친노는 최근 ‘사회민주주의 선언’을 발표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조원희 정승일처럼 당당하게 사회민주주의를 내걸기 바란다. 아니면 자신들만이 민주이고 역사적 흐름이라며 국민을 속이는 꼼수는 집어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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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