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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13]동화 ‘우주놀이’

입력 | 2013-01-01 03:00:00

이수안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우주놀이 해요! 우주놀이 해요!”

반복이의 우주놀이가 또 시작됐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보드게임에 빠져 있는데도 반복이는 오로지 우주놀이밖에 모른다. 반복이는 3학년이지만 유치원생보다도 말을 못하는 현수의 별명이다. 늘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말한다고 내가 지어줬다. 현수는 전에 특수학교를 다녔었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서 이사 온 이곳 주변에는 특수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한 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현수를 같은 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수는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빨간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빨간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 놓는 둥근 바구니처럼 생겼다. 머리에 쓰면 쏙 들어가 마치 깡통인형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수 머리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반복이 아저씨, 또 나물 캐러 가세요? 웬 바구니예요? 네?”

내가 툭툭 바구니를 치자 바구니는 현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화를 낼 줄 알았던 현수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와! 멋져요! 멋져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곧 바구니를 벗어서 내 머리에 씌우려고 했다.

“같이 해요, 우주놀이! 같이 해요, 우주놀이!”

“하하. 반복이 우주로 날아갈 기세네. 내가 이 바보 같은 짓을 왜 해. 너 같은 반복이도 아니고! 야, 김창우! 받아랏!”

나는 현수의 빨간 바구니를 휙 던졌다. 창우는 엉겁결에 빨간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쫓아오는 현수를 이리저리 피하다가 다시 나에게 패스해주었다. 마치 농구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우주놀이 주세요! 우주놀이 주세요!”

현수는 수비수처럼 두 팔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하하! 이거 신나는데! 자! 여기, 여기!”

이번에는 보드게임에 열중하던 미영이에게 던졌다. 미영이는 어디로 패스할지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악! 야! 너 뭐하는 거야!”

현수가 미영이를 그만 와락 안아버렸다. 순식간에 온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얼레리 꼴레리! 미영이랑 반복이랑 안았데요∼! 안았데요∼!”

미영이는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르르 부르르 입으로 반복되는 소리를 냈다.

“누구야! 누가 미영이를 울렸어?”

선생님은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신다. 선생님은 가장 먼저 날 쳐다보셨다. 이미 선생님한테 여러 번 찍힌 나다. 반복이가 우리 반에 전학 오면서 나는 선생님께 미운털이 박혔다. 사실 우리 반에서 제일 인기남은 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늘 교실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고 예뻐하셨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반복이 녀석인 것 같다. 반복이 녀석이 하는 짓에는 모두 관대하시다. 반복이가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늘 현수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반복이 녀석처럼 막 나가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관심 못 받나 저렇게 관심 못 받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나 선생님께 혼나는 사람은 늘 나다.

“박민철! 또 네 짓이지? 네가 또 아이들을 괴롭힌 거지?”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선생님, 미영이를 울린 건 제가 아니라 현수가…….”

“현수 너, 미영이를 울렸니?”

선생님의 물음에 현수는 계속 부르르 부르르 이상한 소리만 반복해서 낼 뿐이었다.

“민철아, 선생님이 현수를 잘 챙겨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선생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셨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수의 바구니로 장난하긴 했지만 미영이를 울린 건 정말 내가 아니다.

“선생님! 왜 매일 현수만 감싸세요?”

나는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대들듯 말했다. 내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무척 놀라신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을 얘기해야 하니? 너희들도 알다시피 현수는 장애가 있는 아이잖니? 그러니까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 지난번에는 현수가 장애를 가졌을 뿐 우리와 동등하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말했다. 선생님은 코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손등으로 코를 닦아댔다. 선생님의 꽁꽁 언 얼굴을 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선생님이 동등하다고 한 건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데 민철이, 너! 계속 그렇게 선생님 말에 대들거니?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지금 당장 선생님 따라와!”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는지 교실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나는 현수를 있는 힘껏 흘겨보았다.

“이게 다 반복이 너 때문이야!”

그 순간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벅저벅 현수 앞으로 걸어가서 빨간 바구니를 쾅 하고 있는 힘껏 밟았다. 빨간 바구니는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현수는 부서진 빨간 바구니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주놀이! 우주놀이! 우주놀이!”

주위에 서성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내게 일주일 내내 급식당번을 하라는 벌을 주셨다. 그나마 가벼운 벌이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반복이 바보 자식. 우주놀이하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생각났다. 현수는 교과서는 잊어도 빨간 바구니는 늘 챙겨왔었다.

‘바구니가 많이 비싼 건 아니겠지? 엄마가 알면 혼날 텐데…….’

이 찜찜한 기분으론 도저히 그냥 집에 갈 수가 없다. 나는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현수와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깨진 바구니를 접착제로 일일이 붙이고 있었다.

“우주놀이 안 돼요? 우주놀이 안 돼요?”

현수가 선생님한테 물었다.

“아니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우리 현수가 좋아하면 계속 하는 거야.”

“우주놀이 좋아. 우주놀이 좋아.”

“다른 아이들은 이 엄청난 우주놀이를 상상도 못할걸?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두들 너의 기발한 우주놀이를 이해 못하는 거야. 현수 최고! 멋져!”

선생님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현수 최고! 현수 최고!”

현수도 손에 든 빨간 바구니 조각을 치켜들고 말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운동장을 나서려는데 우주놀이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왜 빨간 바구니를 우주놀이라고 하는 걸까?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두거나 채소를 씻을 때 쓰는 것이지 우주가 아니다. 우주는 과학체험관에서 보았던 멋진 곳이거나, 불을 끄면 천장 가득 야광별이 빛나는 내 방 같은 곳인데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깟 플라스틱 바구니가 왜 기발하고 멋지다고 하셨을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과 반복이 녀석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샘이 났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주방으로 뛰어갔다. 싱크대 맨 아래 칸을 열고 엄마가 국수 건질 때 쓰던 큰 바구니를 찾아냈다. 현수의 바구니처럼 머리가 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모양은 비슷했다. 나는 바구니를 현수처럼 머리에 써보았다. 순간, 촘촘한 바구니 틈새로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머리에 쓴 바구니를 빙빙 돌려보았다. 그러자 마치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 와르르 쏟아지는 듯했다.

“민철아! 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엄마의 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우주에 온 것만 같았다.

다음 날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드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수는 구석에서 더덕더덕 붙여진 빨간 바구니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야, 박민철! 너도 껴! 나 지금 영국에 빌딩 샀어.”

창우가 두 손으로 보드게임 머니를 세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가방에 챙겨온 바구니를 꺼내 들고 현수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바구니를 든 내 모습에 주목했다.

“야, 반복이! 우리 우주놀이 할까?”

“우주놀이 좋아요! 우주놀이 좋아요!”

현수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느 때도 들을 수 없었던 가장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현수와 함께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뭐야, 박민철! 너 반복이 넘버 투냐?”

창우의 말에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까르르 웃어댔다. 하지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오로지 멋진 우주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