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는 예전 시리즈가 촌스럽다고 계속 수정하죠.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때 그린 그림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조경규 작가는 초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웹툰의 1화를 꺼내들고 보면서 그린다고 했다. “허술한 빈틈마저도 매력이 될 수 있는, 늙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오무라이스 잼잼’ ‘차이니즈 봉봉클럽’ 등 조경규 작가(39)의 음식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그 섬세한 묘사와 채색에 입이 벌어진다. 오죽하면 식도락 웹툰계의 ‘끝판왕’이라는 칭호가 붙었을까.
포털사이트 다음에 ‘돼지고기 동동’을 연재하는 그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그림들로 배고픈 독자들의 현기증을 유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가의 자택 겸 작업실을 찾았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런 묘사가 가능한 건가.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집안에서 자랐다.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저녁밥을 집에서 드셨고, 어머니는 그날의 저녁 식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셨다. 매일 새로운 음식을 해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제일 싫어하는 게 찬밥 데워먹고 냉장고 안에 남은 반찬 다시 먹기다. ‘뭘 먹지?’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조금만 부지런하게 그날 먹을 만큼만 사서 만들면 된다.”
―음식 색감 묘사가 예술이다.
“일부러 야심한 시간, 배고플 때 작업한다. 특히 채색은 밤에 할 때 제대로 나온다. 그리면서 맛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려 놓고 스스로 감탄할 때도 있다. 예전에 장어구이 채색 때는 ‘신이시여, 정녕 제가 그린 그림이 맞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음식은 색이다. 허영만 작가의 ‘식객’이나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은 구성과 요리 설명은 탄탄할지 몰라도 색깔이 없어서 2%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웹툰에 나오는 ‘건강한 것만 챙겨 먹을 필요 있나, 맛있을 때 먹으면 그게 건강식이지’라는 말, 무척 와 닿는다.
“유기농 한우나 무가당 주스 이런 것만 찾아서 먹이는 부모들도 있지만 딸 은영이(7)와 아들 준영이(6)에게 어렸을 때부터 좋은 걸 안 먹였다. 나쁜 음식을 먹였다는 게 아니라 나와 아내가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걸 일부러 먹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을 먹느냐’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먹느냐’라고 생각한다. 의무적인 식사 시간보다는 파티 하듯 자유롭게 먹는 문화가, 부모와 함께 먹으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맛깔스러운 묘사와 섬세한 채색으로 ‘식도락 웹툰의 최고봉’이라는 평을 받는 조경규 작가가 새해를 맞아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길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컷을 보내왔다. 조경규 작가 제공
최근 나온 생활요리와 음식 관련 에피소드를 다룬 ‘오무라이스 잼잼’ 시리즈 단행본 3권부터 중국 현지의 중화요리 탐방기 ‘차이니즈 봉봉클럽’까지 그가 펴낸 요리만화책만 7권이다. “음식 소재는 끝이 없다. 매년 한 권씩 내는 게 목표다. 나중에 은영이 시집갈 때쯤 요리 전집이 나올 수 있게끔.”
―지금 연재하는 ‘돼지고기 동동’에 대해 채식주의자들의 반발은 없나.
“‘고기만 많이 먹자’고 그린 만화가 아니다. 채식이 개인의 선택이듯,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죄책감 갖지 말고 좀 더 마음 편하고 즐겁게 먹자는 의미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채식만이 마치 유일한 건강식이고 영양식인 것처럼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육식을 하는 이들이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매도되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이쯤 되면 양돈협회에서 표창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상복이 없다. ‘1983년 동교초등학교 백일장 입선’으로 시작해 1987년 ‘서울특별시교육회 바른어린이상’을 끝으로 수상 경력이 미천하다. 향후 너른 마음으로 제 만화의 의미를 헤아려주셨으면 한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