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설동 교차로 24시
[시동꺼! 반칙운전] 서울 신설동 교차로 24시
종로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널찍한 오거리가 나타나자 핸들 잡은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아수라장이었다.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길게 꼬리 문 차들, 갑자기 끼어든 오토바이,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불법 U턴한 승합차에 치일 뻔한 보행자….
지난해 12월 20, 21일 신설동 교차로의 24시간을 관찰카메라로 지켜보니 대한민국 나쁜 운전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출근 시간대가 되자 오거리는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꼬리 문 차들로 빽빽했다. 빨간불이 켜져도, 교통경찰이 경광봉을 휘두르며 막아도 소용없었다. 다음 신호를 받은 차들이 대광고교에서 청계8가 방향으로 직진하려 했지만 경적만 울려댈 뿐 앞으로 가질 못했다. 동대문구청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차들의 꼬리가 교차로를 점령한 탓이다.
보다 못한 한 택시가 경적을 길게 울리며 꼬리 문 차 중간을 파고들어 직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뒤늦게 꼬리 물었던 택시와 1t 트럭은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험한 장면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꼬리 물거나 신호를 무시한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발생한 사고는 2011년에만 23건(39%)이었다.
취재팀이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와 집계해보니 이날 오전 7∼9시 꼬리 물기로 다른 차의 진행을 방해한 차량은 203대. 꼬리 물기는 전체 차로의 정체로 이어졌다.
○ 정오=깜빡이? 필요없어!
○ 오후 7시=급출발이 부르는 위험
보행자와 섞여 횡단보도 위에 서 있던 오토바이가 녹색불로 바뀌기도 전에 출발했다. 그러나 용두동에서 청량리 방향으로 우회전하는 간선버스를 피하려다 넘어져 실려 있던 짐이 쏟아지며 도로가 잠시 마비됐다. 경적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곳 교차로는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호 사이마다 3초간 모든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다. 하지만 이 빨간불이 1, 2초를 아끼려는 오토바이들엔 출발 신호나 다름없었다. 이날 오후 6∼10시 집계 결과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 가운데서 기다리다가 직진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급출발하는 오토바이가 252대였다. 운전자들은 제 신호를 지켜 출발하려다가도 어느 방향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구조다. 지난해 이곳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20%가 오토바이와 관련됐다.
○ 밤 12시=넘쳐나는 눈치운전
심야에 차량이 없다고 과속하는 나쁜 운전은 신호를 지켜도 위험상황을 빚었다. 과속으로 달리다 보니 노란불을 보면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것. 추돌을 피하려고 급제동하는 뒤차가 여럿이었다. 2011년 이곳에서 일어난 추돌 사고 10건(16.9%)은 대부분 급정거한 차를 피하지 못해 발생했다.
오전 6시 반, 날이 밝아오자 신설동 교차로는 잠시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꼬리 물기와 끼어들기, 정지선 위반은 반복될 것이고, 그중 몇 건은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 대한민국 ‘나쁜 운전 전시장’인 이곳은 어떻게 해야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특별취재팀>
▽사회부
이동영 차지완 차장, 신광영 이은택 김성규 장선희 조건희 서동일 기자
▽국제부
박현진 뉴욕특파원, 이종훈 파리특파원, 박형준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