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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른 시장대응… 납기일 준수… 해양플랜트 시장 ‘씽씽’

입력 | 2013-01-03 03:00:00

■ 대우조선 ‘심장’ 옥포조선소를 가다




지난해 12월 26일 헬기에서 촬영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해양 건조 구역. 가운데 보이는 4개의 기둥은 장력 고정식 플랫폼의 하부 구조물로 수주액은 약 2억 달러(약 2140억 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 “한국 조선업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주문량 감소로 최근 몇 년간 기대만큼 실적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해양플랜트(석유, 가스 등 해양자원의 시추, 저장 등에 쓰이는 특수선박이나 구조물) 사업이 효자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끊어진 길에서 해양플랜트라는 기회를 잡은 국내 업체들은 과연 올해도 희망의 노를 저어갈 수 있을까. 최근 국내 업체들은 발 빠른 시장 대응과 철저한 납기일 준수를 무기로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던 해양플랜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의 지난해 전체 수주액 중 해양플랜트 수주액 비중은 60∼80%대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부문의 선전에 힘입어 국내 주요 업체 중 유일하게 목표 수주액(11조7700억 원)을 초과 달성했다.

지난해 12월 21일 대우조선의 ‘심장’인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를 찾았다. 2만5000명에 이르는 직원들은 연말의 어수선함도 잊은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옥포조선소에서 만난 박동혁 대우조선 부사장은 “조선업의 지형은 결국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효자’ 노릇 하는 해양플랜트

조선소에는 아침부터 내린 비로 하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주황색, 연두색 등 형형색색의 우비를 입은 현장 직원들은 안개보다 더 짙은 입김을 내뿜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십 m 높이의 배 위로 각종 기자재를 끌어올리는 크레인을 보니 목이 뻐근했지만 장관이었다.

옥포조선소는 크게 동쪽의 상선 건조 구역과 서쪽의 해양플랜트 건조 구역으로 나뉜다. 상선 중심으로 운영되던 조선소에 해양플랜트 건조 구역이 추가되면서 자연스레 동서 구분이 생겼다. 상선 건조 구역에 있는 1호 독(길이 531m, 폭 131m의)은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최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시추 드릴십’에 올랐다. 드릴십은 바다 위에 떠서 심해 지반을 뚫는 배다. 카메라를 목에 둘러멘, 낯선 얼굴의 기자가 배에 오르려 하자 직원 한 명이 수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선주사가 파견한 사람이다. 선주사들은 건조 절차 확인과 안전 검사 등을 위해 엔지니어들을 파견한다.

축구장 2개만 한 크기(길이 238m, 폭 42m)의 이 드릴십은 2011년 5월 미국 해양시추회사 ‘밴티지드릴링’으로부터 수주했다. 최대 1만2000m 깊이까지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올해 5월 인도될 예정이며 가격은 6억 달러(약 6420억 원)에 이른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0월 미국 ‘트랜스오션’으로부터 드릴십 4척을 총 26억2000만 달러(약 2조8030억 원)에 수주하는 등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조선업계의 특성상 수주 계약이 앞으로 2, 3년간 먹을거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미래도 밝다.

○ 대응력과 납기일 준수가 성장의 페달

50m 높이의 배 위에 올라 조선소 전경을 내려다봤다. 조선소 곳곳을 누비는 자전거들이 많이 보였다. 조선소가 여의도 면적의 1.6배(약 4.62km²·약 140만 평)나 돼 현장 직원들에게 자전거는 안전장치만큼이나 중요한 필수품이다.

건너편 바다 위로 거대한 기둥 4개가 보였다. 대우조선이 올해 초 셰브론에 인도할 예정인 장력 고정식 플랫폼(TLP)의 하부 구조물이다. 이 배는 곧 지구 반대편 멕시코 만으로 건너가 해저 원유를 끌어올리게 된다.

“일본 조선업계가 무너진 이유는 자신들만의 기준을 고객사들에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박 부사장은 해양플랜트에서 국내 업체들이 선전하는 이유로 ‘대응력’을 꼽았다. “민첩한 대응력을 가진 국내 업체들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겁니다.” 기상 변화와 특이 지형 등 다양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글로벌 석유회사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빠르게 충족시켜 주는 한국 업체들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철저한 납기일 준수도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다. 하루하루가 곧 돈인 석유회사 입장에서는 납기를 잘 맞추는 조선업체가 좋을 수밖에 없다. 예정된 납기일보다 일찍 플랜트를 인도해 두둑한 보너스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대우조선은 2011년 프랑스 토탈에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3주 일찍 인도해 보너스로 600억 원을 받았다. 감사의 의미로 토탈 사장이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200만 배럴을 저장하는 세계 최대 크기 FPSO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과제도 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쓰는 설비의 경우 유럽 업체들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해 아직 입찰 경쟁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2015년까지 유럽 업체와의 격차를 없애겠다는 목표로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거제=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