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전 EU대사·연세대 객원교수
강대국 특사 파견은 이제 그만
우선 ‘4강 외교’란 사대주의적인 용어를 폐기할 때가 되었다. 또 당선인 시절의 관행인 미, 일, 중, 러 등 소위 4강의 주한 대사 접견이 이번에도 반복되긴 했지만 이들 국가에 패키지로 특사를 파견하는 일만은 재고해야 한다. 긴급한 현안으로 당선인의 뜻을 꼭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직 대통령을 제쳐두고 상대국 정상에게 특사를 보내는 것은 외교 의전에도 어긋나거니와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과거의 외교 행태를 떠올리게 된다.
정상회담의 경우도 상견례를 위한 외유라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등 중요 현안별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당사국과 긴밀히 조율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컨대 대북 정책의 경우 박 당선인이 신뢰하는 참모를 미국 중국 북한에 보내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의지를 알리고 협의를 한 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또 신임 대통령이 어느 곳을 먼저 방문하느냐 하는 것도 그 의도와 상관없이 해당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번에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동남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 실질 협력이 중요한 나라들을 먼저 방문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특히 중국 일본의 총리는 올 상반기에 서울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만날 기회가 있으므로 이들 국가 방문은 여유를 갖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안보 체제를 강화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총리실 외교안보비서실, 외교통상부로 나뉜 현 외교안보 시스템과 조직, 인원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각 부처에 분산 중복되어 있는 담당 조직을 통합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설치하고 장관급 처장하에 전략기획, 정세분석, 남북관계, 외교, 국방, 경제안보, 위기관리 등의 기능을 망라한 사무처를 상설화하여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 또 외교부를 양자외교, 다자외교는 물론이고 통상외교, 개발협력외교, 공공외교, 재외국민 업무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조직으로 확대 개편해 업무별 전문성이 있는 각 부처 인원을 포함한 4000∼5000명 수준으로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박 당선인은 동북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국제사회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본인 역시 외교 안보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이제는 중추적 중견국가 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고 요동치는 동북아 질서 재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준우 전 EU대사·연세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