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수십년간 ‘다수의 유권자’ 5060들이 줄서서 투표한 건 중산층 복원해달라는 뜻이들의 기대에 부응못한다면 ‘분노의 부메랑’ 맞을수도
황호택 논설주간
지금의 베이비 부머는 급격한 인구수의 증가로 고비 고비마다 사회 변화를 불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령(學齡) 아동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을 했다. 중학교 무시험 진학, 고교 평준화, 대학 졸업정원제 같은 새로운 제도도 베이비 부머 학령인구의 증가와 연관성이 깊다. 베이비 부머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아파트가 보편적 주거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이 40대가 돼 자녀에게 공부방을 만들어주기 시작하면서 중대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베이비 부머들은 유신독재의 피해자다. 3월에 개학해 수강신청을 마치고 교과서 진도를 40∼50페이지 정도 나갈 무렵이면 4·19가 다가오고 유신반대 데모가 터졌다. 교정에 페퍼포그가 깔리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느 해 5월에는 탱크가 교문을 가로막고 집총한 군인들이 등교를 막았다. 그렇지만 70년대 대학 진학률은 10%를 넘지 못했고 유신반대 데모도 서울 소재 대학에서만 볼 수 있는 행사였다.
대학에 다니며 유신정권이 쏘는 페퍼포그에 눈물을 흘렸던 혜택 받은 베이비 부머들도 나이가 들면서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독재는 여전히 불쾌한 추억이지만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지도자라는 인식이 생겼다. 특히 70년대 학번들은 노무현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 된 386(지금의 486·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575(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들은 바로 밑의 후배들이 정치적인 지위를 다 차지하고 선배를 몰라보며 ‘4가지’가 없다는 보편적 인식을 갖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가 많으면 강력한 정치적인 힘을 갖게 된다. 지금의 50대들이 60대 70대가 되고 나면 어떤 정당이든 이번 대선의 민주당처럼 2030들을 향한 추파만 던지다가는 만년 야당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세대에 투자하지 않고 노인복지 예산만 늘리는 것은 국가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목에서 베이비 부머의 자제가 필요하다.
한국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575세대의 상당수는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평택대 김용희 교수는 “대학생의 상당수는 5060들이 2030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생각하고 그들의 부를 불리기 위한 도구로 쓴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진단했다. 5060 기득권 구조의 고착 속에서 젊은 세대가 안철수 현상에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베이비 부머의 맏형인 50대 중후반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일찍 직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다. 생계가 막연해 국민연금을 가불해 쓰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젊은 세대 못지않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문화에 강하다. 할일이 딱히 없으니 젊은 세대보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더 열심히 한다.
정치나 소비문화도 베이비 부머를 무시하다가는 이번 민주당처럼 큰코다칠 것이다. 인구 수도 많은데 추운 날씨에 90%씩 나와서 투표하는 이 세대를 누가 수구 기득권이라고 욕할 것인가. 10년 전에는 노무현을 찍었던 세대들이 이번에는 친노(親盧)에 등을 돌리고 박근혜를 찍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베이비 부머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약속대로 중산층을 복원하는 데 실패한다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기대감이 쉽게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50대의 높은 투표율은 양날의 칼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