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벅 월터 ADT캡스 대표
한국인들은 두 번의 새해를 맞는다. 첫 번째는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서, 두 번째는 민족의 명절인 ‘설날’로서 보내는 것이다. 그중 새해와 관련해 내가 겪은 가장 특별한 경험은 일출과 설날 풍경이다.
근래 만나는 임직원마다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물으면 “일출을 보고 왔다”는 대답을 가장 많이 했다. 찬바람 쌩쌩 부는 바닷가나 높고 험한 산 위에 올라 일출을 바라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한국 사람들은 험한 날씨도 말리지 못할 만큼 그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일출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겪었던 새해맞이 풍경은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연말 분위기가 달아오르지만 정작 송년모임은 한두 차례 파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12월 31일에도 연인이나 친구들과 모여 새해를 맞이한다.
반면 한국의 설 풍경은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설날이 다가오면 평소의 두 배, 세 배 걸리는 시간을 운전해 고향을 찾는다. 그렇게 모인 가족은 밤새 음식을 준비하고, 설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한복을 차려 입고 조상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흰떡과 만두를 넣고 끓인 음식을 나누어 먹고,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찾아 감사의 세배를 올린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공부와 건강을 축원하는 덕담과 용돈을 건네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나서 즐거워하는 모습과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가장 부러워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어르신에 대한 공경이다. 버스나 전철에서 어르신들에게 주저 않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또 어르신들에게 전철과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본 적이 없다. 이런 어르신에 대한 공경은 약자나 장애인을 배려하는 서양식 에티켓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전 세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살 만한 곳 아니던가. 최근 미국의 잇따른 총기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가족과 어르신에 대한 감사와 배려가 살아 있는 한국의 새해 풍경을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기 다른 세대가 공존하고 배려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풍습들이 예전에 비해 조금씩 잊혀지거나 퇴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뉴스를 보면 명절을 이용해 여행이나 해외 관광을 나가는 사람들로 공항은 초만원이라고 한다.
브래드 벅 월터 ADT캡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