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 50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
홍봉의 씨가 자살하면서 아내와 딸에게 남긴 유서. ‘보고 싶고 귀여운 내 딸’ 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유서에는 ‘예쁘게 잘 커줘서 고맙다. 정말 미안하다. 불쌍한 엄마 항상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채널A 영상] 필리핀서 실종된 아들 찾던 아버지 ‘눈물의 유서’ 뒷이야기
“엄마, 1000만 원만 빨리 송금해주세요.”
이튿날 다시 전화가 왔다.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을 또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상했다. 여행갈 때 왕복 티켓을 마련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홍 씨는 “하루만 지나면 귀국인데 왜 돈이 필요하냐”며 참으라고 했다. 이후 석동 씨와는 연락이 끊겼고, 돌아오기로 한 22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 그는 없었다.
가족들은 석동 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고 경찰과 외교통상부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카지노에 빠졌거나 여자를 만나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백방으로 노력해 필리핀 현지에서 누군가 석동 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뽑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했다. 여동생 경화 씨(24)는 “돈을 인출하는 사람이 오빠가 아니었다”며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2011년 12월 누군가가 “석동 씨의 행방을 알려 주겠다”며 수천만 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는 지난해 6월까지 대여섯 차례 계속됐다. 가족들은 이 목소리를 녹음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곧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가족들에게 들려왔다. 필리핀으로 여행 갔다가 납치당한 뒤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피해자 3, 4명이 음성파일 속 인물에게 똑같이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 비산동에서 발생한 환전소 여직원 살해 강도단의 부두목인 김종석(43)이었다.
가족이 두 차례 필리핀을 방문해 알아낸 사실은 이랬다. 최세용(45) 김종석 김성곤(40)은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피한 뒤 필리핀 여행객을 납치해 돈을 뜯어냈다. 대부분은 돈을 주고 풀려나 귀국했지만 석동 씨는 그러지 못했다. 행동대장 김성곤은 이미 2012년 5월 필리핀 경찰에 잡혔지만 석동 씨의 행방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던 차에 희소식이 들렸다. 부두목 김종석이 2012년 10월 5일 필리핀 경찰에 붙잡힌 것이었다.
가족들은 이 소식을 사흘 뒤 들었다. 김종석이 아들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 증언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소식이 전해진 그날 김종석은 필리핀 경찰서 유치장에서 목을 매 숨졌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잠깐이나마 희망에 부풀었던 아버지 홍 씨는 더욱 무너져갔다.
납치단의 두목 격인 최세용은 2012년 11월 태국 치앙라이 이민청에서 비자 갱신을 하다가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태국 경찰에 검거됐다. 최 씨는 최근 현지 1심에서 징역 8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석동 씨 행방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필리핀 현지에 우리 경찰을 보내 최 씨 일당을 모두 구속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며 “용의자 신병 인도는 외교통상부에서 노력할 문제”라고 밝혔다. 박기준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과장은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다리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석동 씨가 행방불명되기 전까지 홍 씨 가족은 남부럽지 않게 단란했다. 홍 씨는 청주의 한 사립대학 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했고, 아내는 보험회사를 다녔다. 딸 경화 씨(석동 씨의 여동생)는 항공사 직원이었다. 실종 후 행복은 순식간에 깨졌다.
아들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성격까지 난폭해졌다. 술에 취해 폭언과 행패를 부리는 날이 잦았다. 술이 깨면 후회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곡기를 끊고 술만 먹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1일 자정경 빈소를 지키던 경화 씨는 “자식의 빈자리가 너무 큰 탓인지 아버지가 폭력적으로 변했고 다툼도 잦았다”라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고 울먹였다. 석동 씨 대신 상주 역할을 하던 사촌형 성일 씨(49)는 “국민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했다.
홍 씨가 편지지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게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당신 힘든 짐만 지고 먼저 가지만 이승에서 못해준 거 죽어서라도 꼭 갚을게” “어디 나무랄 데 없는 우리 딸 그저 아빠는 착한 딸에게 나쁜 모습만 보여줬구나. 불쌍한 엄마, 항상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 아빠가 하늘에서 지켜볼게.” ―2012년 12월 30일
청주=장기우 기자·윤희각·박훈상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