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불우이웃돕기성금 모아 기탁폐지 팔아 한푼 두푼, 200만원…장애인이라 받기만 했던 사랑, 나눌 수 있어 더 행복합니다
장애인의 어려운 이웃 사랑은 따뜻했다. 울산장애인종합복지관의 직업재활훈련생들이 자동차 부품(에어컨 필터)을 조립하면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부품 조립으로 얻은 수익금을 포함한 1년간 모은 성금 200만 원을 2012년 12월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우리도 이웃을 돕자”… 매달 한 번 장터 열어
울산장애인종합복지관 2층에 설치된 폐지수거함.
“직업재활훈련생 가운데 한 명이 ‘도움만 받아온 우리 장애인들도 남에게 도움을 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어요. 다른 훈련생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요. 담임교사 등 직원들도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재활훈련생들은 ‘반짝 장터’도 열었다. 매월 한 차례씩 음식이나 집에서 갖고 온 중고품 등을 판매했다. 10월에는 직원들까지 참여했다. 복지관 트럭을 몰고 맛과 질 좋기로 소문난 충남 공주의 정안에서 밤 120kg을 사왔다. 이 밤을 몇 개씩 포장해 보호자와 직원, 울산의 각 성당을 돌며 판매했다. 밤 판매로 얻은 수익금 수십만 원도 통장에 적립했다.
● 5년째 암투병 이해인 수녀도 ‘시낭송회’ 동참
2012년 11월 20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 울주문화예술회관. 응접실처럼 꾸민 무대에선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차분한 목소리로 한 편의 시가 낭송됐다. 3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눈을 감은 채 시상(詩想)에 빠져들었다. 시를 낭송한 이는 이해인 수녀(67·사진). 이 수녀는 연주 동호회인 ‘뮤직마운트’의 연주에 맞춰 자신이 쓴 ‘보름달에게’를 낭송했다. 이날 시 낭송회는 울산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12주년을 기념하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 모으기 행사였다.
복지관 측은 처음에는 이 수녀를 모시는 것을 몇 번이나 망설였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5년째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같은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이지만 투병 중인 사람에게 시 낭송을 부탁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송 수녀가 이 수녀를 찾아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수녀는 해맑은 미소로 “장애인들의 뜻이 너무 가상하고 고맙다”며 기꺼이 승낙했다. 이날 시 낭송회의 티켓을 장당 1만 원에 판매했다. 초청자들은 후원금까지 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참석한 신장열 울주군수도 힘을 보탰다. 이 수익금 역시 성금 통장에 쌓였다.
복지관 1층에는 직업적응훈련반 교실이 있다. 이 교실 역시 나눔을 위한 작업으로 언제나 바쁘다.
장애인 훈련생 15명은 조금 느리지만 정성을 다해 자동차 부품을 조립했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자동차 에어컨의 먼지를 거르는 부품을 조립하는 일. 울산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물량을 받아와 완성품을 만든 뒤 다시 납품한다. 한 개를 조립해 남는 수익은 불과 10원. 그렇게 받은 10원씩을 모아서 이웃을 위한 성금을 쌓아가고 있다. 훈련반 민재홍 담임은 “장애인들의 직업교육을 겸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반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15∼35세 장애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이곳에서 2, 3년 훈련하면 곧바로 취업이 가능하다. 초보 실력을 갖춘 장애인들은 자립준비반에서 수업을 받는다. 자립준비반 재학생은 현재 12명. 직업적응훈련반 박성철 씨(가명·21)는 “단순 작업이지만 일도 배우고 수익금으로 남을 돕는다는 생각에 즐겁게 작업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난 1년간 이곳 복지관의 장애인 훈련생들은 1년간 폐지를 모아 팔고, 장터를 운영하고, 시 낭송회를 열고, 부품을 조립해서 거의 200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성금 모금에 중심이었던 직업적응훈련반 등 청년기 지적장애인 10명과 이 사무국장, 서종근 팀장 등이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울산 남구 신정동)를 찾아 김상만 공동모금회장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남들에게 보살핌과 도움을 받아온 장애인들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1년간 성금을 모아 공동모금회에 기탁한 사례는 매우 귀감이 되는 일”이라며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소중한 정성을 전한 장애인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다”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상호 씨(22·지적장애 2급)는 “성금을 전달한 뒤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모두들 좋아했다. 일과 나눔에 대한 기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울산장애인종합복지관은 ‘가족은 장애인에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직접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선 것도 가족을 통해 사람 간의 따뜻한 정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관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여행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장애인 가족에게서 여행계획서를 제출받아 심사한 뒤 20만 원의 여행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복지관이 문을 연 것은 2000년 11월 20일. 울산 최초의 장애인 종합복지관이었다. 성베네딕도 수녀회 산하 사회복지법인 로사리오 카리타스가 울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복지관 이용 장애인은 하루 평균 300명 안팎. 울산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4만9263명. 그러나 울산시에 장애인복지관은 3곳뿐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이 복지관에 입소하기 위해 1년 넘게 대기하기도 한다. 복지관 측은 장애인들의 재활과 직업훈련을 위해 남구와 동구, 북구에도 새 복지관을 설립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 에필로그
기자가 아는 친목모임은 10여 년째 연말에 50만 원 안팎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해왔다. 하지만 2012년에는 하지 않았다. ‘적립된 회비가 별로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수백만 원을 들여 부부동반 송년회를 했다. 몸도 성치 않은 장애인들이 1년간 성금을 모아 남을 돕는데….
울산이 ‘부자(富者)도시’라는 것은 통계청의 ‘2011년 지역소득(잠정)’에서도 입증된다. 1인당 개인소득(지역총소득에서 임금, 이윤, 연금 등 개인이 얻는 소득)과 지역총소득(지역 내 경제주체가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는 소득), 지역내총생산 등 3개 부문에서 울산이 모두 전국 1위였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