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의 좌충우돌 그림 수업기 ‘철들고 그림 그리다’ 펴낸 정진호 씨
정진호 씨가 인천공항에서 그린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 비행기는 그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해주었고 벽화 예술가가 되게 해준 대상이다. 한빛미디어 제공
그 남자는 창밖을 보며 작은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정 씨는 그림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륙을 준비 중인 비행기의 모습이었다.
‘아, 부럽다’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휘감았다.》
평범한 40대 직장인도 ‘일상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정진호 SK커뮤니케이션즈 기업문화팀 차장.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봄, 그는 몰스킨 노트와 펜 한 자루를 사서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다. 책상 주변에 있는 컵 전화기 휴대전화 지갑 같은 작은 사물을 스케치했다. 30분 이내로 그릴 수 있는 A5용지 크기(148×210mm)의 그림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던 아들이 그에게 붓질하는 법, 물감 섞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매일매일 그리기’에 도전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버스 안에서,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연필과 펜으로 시작한 그림은 색연필, 수채화로 발전해갔다. 아들과 함께 ‘서울드로잉’ 수업을 받으며 도심 곳곳의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책 ‘철들고 그림 그리다’(한빛미디어)에는 그가 좌충우돌 그림을 그리며 일상의 행복을 깨달았던 기록이 담겨 있다.
“누구나 어릴 때는 종이만 주면 본능대로 맘껏 그림을 그리죠.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남의 눈을 의식해 그림의 즐거움을 잃어버려요.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지루했던 내 삶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린 지 1년 반 만에 책을 썼고, 서울 명동에 있는 성바오로딸서원 서점 내 갤러리에서 수채화 60여 점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전시된 작품 중 절반이 작품당 5만∼7만 원에 팔렸다. 정 씨는 “내 그림이 좋아서 집에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강아지 스케치 작품.
“철들어 시작한 그리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수단입니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뜻한다는 것은 알아도,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행운은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행복은 스스로 직접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