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공포의 눈
눈을 가리고 운전하라는 건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순간적이나마 운전자의 눈을 멀게 하는 상향등과 불법 HID램프는 치명적이다. 앞뒤 차량이 상향등을 비추자 기자는 눈도 뜨지 못하고 당황하기만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의 도로는 ‘빛 전쟁’ 중이다.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상향등을 켜 놓고 질주하거나 불법 HID(High Intensity Discharge·고광도 가스 방전식) 램프를 달고 과속을 일삼는 운전자가 비일비재하다. 눈앞에 손전등을 비추는 것과 마찬가지라 상대 운전자의 시력을 순간적으로 잃게 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동 꺼! 반칙운전] 사람 잡는 불법 전조등
불법 HID 램프는 더 위험하다. HID 램프는 일반 전조등의 3분의 1 전력으로 수십 배 높은 광효율을 제공하고 색이 자연빛과 흡사해 운전자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정품 HID보다 불법 HID를 설치한 운전자가 더 많다. 정품은 전조등 빛의 방향이 맞은편 운전자의 눈을 향하지 않는다. 또 함께 설치된 ‘자동광축조절장치’가 차가 오르막을 오를 때 자동으로 빛을 아래쪽으로 비춰 운전자의 눈부심을 방지한다. 불법 제품이 맞은편 운전자의 눈에 직접 빛을 쏘는 것과 다르다.
▲ 동영상 = 운전자 눈멀게 하는 이기적인 HID 라이트의 위험성
교통안전공단이 30명의 실험자를 대상으로 눈부심 노출 후 시력 회복 시간을 확인한 결과 일반 전조등을 봤을 때 시력 회복 시간은 평균 3.23초인 데 반해 개조 HID 전구는 최대 4.72초가 걸렸다. 시속 80km로 달리고 있었다면 브레이크를 밟기까지 74m, 차량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140m를 더 달려야 한다. 도로에서 140여 m를 눈을 감은 채 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정품 HID 램프의 가격은 100만 원이 넘는데 불법 제품은 10만 원 선이다. 인터넷상에서 불법 HID를 검색한 결과 ‘눈의 피로도를 낮추고 싶다면 HID 설치하고 안전운전하세요’ 등의 불법 HID 판매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포구 성산동의 한 자동차정비소 직원은 15만 원을 제시했다. 이 직원은 “눈이 한결 편하고 운전이 쉬워진다. 초보 운전자들에게 더 필요하다”며 “누가 100만 원도 넘는 정품 HID를 설치하나. 우리 것은 탈부착도 쉬워 단속에 걸릴 것 같으면 빼면 된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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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이은택 기자 dong@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